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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태일 Jul 27. 2023

사장의 외도,
면접 보고 왔습니다.

나는 독립꾼입니다. ep.14



오늘도 어김없이 서재에 있는 휴대폰이 열심히 소리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요즘엔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딸이 인간 알람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피곤한 날이 아니라면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기상을 했다. 덕분에 매일 아침 비슷한 루틴을 갖게 된 건 큰 장점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시계 알람을 맞췄다. 마치 출근 준비를 하듯이 샤워를 급하게 하고, 포마드를 머리에 잔뜩 바르고 각을 세워 힘을 주기도 했다. 아침 9시 30분, 미팅은 11시였지만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 보러 왔습니다"


오늘의 중요한 미팅은 '면접'이었다.

여전히 나는 창업가였지만 작은 스타트업에 '면접'을 보러 온 것이다.

지난 12월 말, 연말이 되면서 아내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휴식 보다 '창업'을 택했지만 사업도, 영업도, 관계도, 경험도 많은 부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한 해였다. 그러나 아쉬움도 컸다. 개인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슈가 생겼고, 일에 허우적 대다 보니 '팀과 비전'을 통한 조직의 성장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폐업은 훗날 고민하고, 다시 한번 채용 시장에 '나'를 팔아보기로 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구직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영업도 간간히 하고, 제안 요청이 오면 빠듯하게 준비해서 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 붕-떠서 인지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어쩌면 더 확고해진 상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업의 롤러코스터를 겪기엔 가족의 불안함이 커 보였다. 그래서 채용 시장도 동시에 노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11년 만에 '면접'이라는 것을 봤다. 서류 통과 후 면접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나?'' ''일단 해보자'' ''뭐든 결과가 나오겠지'' ''나를 점검해보자'' 등이었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기획자로서, 마케터로서의 직무는 같지만 산업의 방향을 넓혀봤다. 스타트업, 플랫폼, 커머스, 유통 등 기존 광고 대행사의 마케팅 서비스보다 직접 브랜드를 비즈니스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찾고자 했다. 



"자기소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라'' 인생 슬로건을 가진 저는, 왕태일입니다. 
저는 3가지의 핵심 가치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첫째는 리더십.. 둘째는 커뮤니티.. 셋째는 크리에이티브.. 블라블라.. 구구절절 '나'를 소개했다.


회사 소개를 해야 할 일은 많았는데 오랜만에 '나'를 소개해보니 영 어색한 게 아니다. 끝까지 경청하며 호기심으로 질문을 해준 면접관들도 왠지 고마웠다. 50분 정도 면접이 진행되었다. 분위기는 좋았고, 오히려 내가 질문이 많았던 거 같아서 민망했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진 건 분명 기분 탓이었을 거다.


1차 면접 결과는 아직이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채용 시장에서 '나'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면접 때 받았던 질문 중에 기억나는 게 몇 가지 있다.


''지금도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나요?''

''네, 맞습니다. 폐업은 하지 않았고, 업종 변경을 통해 운영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 나는 법인 회사를 만든 창업가이다. 여전히 사장이었고, 마케팅 디렉터이다. 현재 일이 없어서 채용 시장에 나타난 거다. 외도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솔직한 심정은.. 재창업을 반드시 하고 싶으니까..) 더 많이 배우고, 성정에 갈증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댔지만 왜 그렇게 창업한 회사에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작은 회사라서 폐업하고 다시 하면 되는걸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면접은 생각보다 긴장되진 않았다. 경력이었고, 리더급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1차 실무 면접인데 누가 면접관인 걸까. 스타트업답게 데이터 책임자와 영업 및 마케팅 겸업 중인 본부장급이 실무 면접관이었다. 오히려 편했고, 자신감도 나름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직원으로 채용되기 위해서라는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해당 산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고 마케터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질문이 많았고, 현장에서 아이디어도 내고, 해당 분야에 대해서 공감하며 응원의 화답을 보내기도 했다. 현실은 '직장인'이 되는 거지만 마음속 깊게 자리한 '야망'은 감출 수가 없던 것 같다.


그래서, 날 뽑아 주실 건가요?

사장의 외도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페이스북에 결국 '사업 실패'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미움받을 용기를 냈다. 글을 올리고 몇 군데 연락이 오기도 했다. 같이 일해보자, 면접을 한 번 보자, 요즘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셨다. 물론 대부분 ''파이팅''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신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왕조시대가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나는 바로 '직장인 마케터'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11년 만에 이력서를 작성했다. 처음엔 막막한 게 사실이었지만 시간 순대로 리스트업을 하고, 카테고리를 묶어보니 마케팅/광고 분야에서 꽤 많은 프로젝트와 신사업, 최근 창업까지 흥미로운 스토리가 쌓인 경력 기술서가 완성이 되었다. 헤드헌터들은 말했다. 조직에서 오래 근무한 이력이 장점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했다. 인재상과 컬처핏, 스펙, 경험, 경력 등 다양한 각도로 검토를 하기 때문에 지원대비 피드백은 소수에 불과했다. 설 명절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여러 채용 플랫폼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이것도 귀찮을 때가 있지만 틈틈이 '마케팅' 관련 리더급으로 눈 부릅뜨고 발굴하는데 힘써야 겨우 지원할 만한 회사를 찾게 되는 듯하다.


서류를 작성하고, 면접까지 진행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정체성의 혼란이 되었지만, 일단 지원하고, 만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오랜만에 자기소개도 써보고, 연습도 했다. 면접관으로 정말 많은 동료들을 채용해 왔는데 반대인 입장에서 '나'는 어떤 면접 자였을지 궁금하다.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글쎄 훌륭한 리더로 보였을까, 아니면 반대로 적합하지 않은 존재였을까?


2022년 사장이 된 후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법인 회사의 대표지만 직원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오늘, 유난히 긴장과 설렘보다 묘한 감정이 휩싸인 하루를 시작했던 거 같다.


그래도 11년 만에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본 후기를 한 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그래,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구나.. 잘했다. 너


사장이 되고,

생존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이력서를 제출하고 있다.


저를 채용해 주실래요?


+


나는 독립꾼입니다. Ep.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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