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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크리스마스는 어때요?

6. 유방암 수술 후 방사선치료기

by Psyber Koo

연두 새잎이 어느덧 각자의 초록이 되는 오월이다. 꽃가루가 눈발처럼 날리는 눈부신 오월의 오후를 이렇게 각 잡고 마주하며 누린 적이 언제였던가? 오후 1시 30분이 방사선치료 예약시간이라 조금 이른 점심을 하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평일 한낮은 건물에 박혀 살던 내가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새삼스럽다. 변덕스러운 매일의 봄날씨와 어제와는 다른 색을 찾을 수 있는 거리의 초록들 그리고 요일마다 다른 교통체증에 맞춰 춤추듯 날리는 꽃가루송이들 이 모든 것이 오월의 얼굴이다.


방사선치료는 이제 3번 남았다.

총 20회인데 휴일이 많은 오월을 끼고 치료시작해서인지 체감은 1달을 넘긴 것 같다. 장이 있으면 단도 있는 법. 방사선치료로 암세포 외 일반세포도 공격을 받아 치료가 누적되면 이를 회복하느라 피로감이 생기는데 치료 중 휴일이 많은 건 회복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적극적 치료의 막바지인 방사선치료는 별거 없는 거 같지만 별거 있으므로 세심함을 놓아서는 안된다.

치료가 연달아 2-3회 지속되면 열감이나 살갗의 찐득거림이 더욱 불쾌해지므로 땀이 나지 않도록 유의한다. 치료 전 기대했던 걷기나 산책과 같은 신체활동은 막상 닥치니 치료에 의한 피로감도 있지만 땀과 관련된 불편감으로 여전히 주저하게 된다. 집에서는 헐렁한 면티만 입은 채 생활하며 호르몬약을 복용해서인지 갑자기 땀이 나는 일이 허다하므로 거의 집콕생활을 하며 그때그때 가볍게 씻고 로션 바르기로 대응한다.

치료부위는 검붉게 변했지만 다행히 피부 벗겨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보습제는 집에 있는 베이비로션을 활용했고, 치료 전에는 바르지 않고(안내자료에 의하면 보습제로 피부가 더 상할 수 있다 함) 치료 후 열감 낮추기를 먼저 한 뒤 검붉어진 부위에 듬뿍 발라주었다. 치료부위 중 접히는 부분인 겨드랑이는 기분 나쁜 오묘한 불편감이 있는데 치료가 끝나면 때처럼 벗겨질 수 있으며 이후 괜찮아질 거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결국 이렇다 할 연고처방 없이 치료가 끝날 예정이다. 염색, 펌, 탕목욕, 사우나는 방사선치료가 종료되고도 2개월 후에나 가능하다 하니 사지멀쩡하다고 막 굴리면(?) 안 되겠다 싶다.




꼼짝없이 지냈던 기간에 비해 그래도 방사선치료기간은 활력이 있다. 짧은 구간이지만 예전처럼 자가운전으로 병원을 오가고 그간 온라인으로 안부만 전했던 친구와 오프라인 약속도 잡아본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을 되찾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반짝하고 활기를 찾는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일상은 비 젖은 종이모양을 하고 있다. 치료초기에 읽던 독서도 거의 하지 못하고 있고 운동이나 산책도 마음같이 잘되지 않으니 마음의 부채는 늘어만 간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방사선치료의 후반기에는 극심함 피로를 호소한다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임에도 나를 채근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치료기에 있음에도 자꾸 내 위치를 잊고 ‘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좌절감이 만연한 일상들. 마지막 치료일까지 내가 암 치료기임을 잊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암치료기간 동안 위로가 되었던 것들 중 하나는 ‘이야기’였다. 잘 짜인 이야기. 흔히 말하는 고전소설과 웰메이드 드라마는 위안이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일종의 도피처로 활용한 것 같다. 안락하고 안전한.

병원을 오가며 가방 안에는 평소처럼 책이 늘 있었는데, 시간은 많고 딱히 방법을 몰랐기에 택한 방법이다. 통증으로 인해 수면문제가 불거졌는데 졸음이 달아난 그 시간을 책 읽기로 활용했다. 아마도 내 상황이 버거워 작가가 만들어 둔 잘 짜인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서사에 기대어 울고 웃는 동안 그 세상에는 아픈 내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잠시 잊으며 이겨냈던 것 같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밑줄 친 내용을 복기하지도 않았고 다 읽은 책을 덮으며 나를 떠올리지도 않았다. 적극적 치료기에 있었던 읽기 활동은 말 그대로 읽기의 연속이었고 내가 없는 독서였으니 일종의 도피였구나 하고 결론을 짓는다.

허나 자기 방어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니 내 도피성 읽기도 봐주기로 하자. 그간 꾸준한 읽기 취미를 위기상황에 잘 활용한 것에 감사하기로 하자.


꽃가루가 바람을 따라 부유하던 오월의 어느 날.

눈 덮인 모습처럼 하얀 꽃이 만개한 이팝나무 가로수아래 꽃보다 예쁜 중학생 한 무리를 보며 지난겨울을 떠올려본다. 수술과 치료로 보낸 6개월의 여정. 어설프나마 브런치에 그때그때 내 감정을 써둔 것도 참 잘했다 싶다.

아! 수술 후 병실에서 보냈던 지난 크리스마스를 이제야 누릴 수 있겠구나 싶다. 거창하지 않아도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축복인 오월의 크리스마스!

모두 해피 오월의 크리스마스!


오! 해피 오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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