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리고 수술실

수술 후 5년 동안은 집중 추적관찰기간입니다.

by Psyber Koo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싶은 것들이 있다.

대체로 부정적 감정을 경험케 하는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가까운 존재와의 이별 후 감정을 처리하는 게 어려워 개그프로그램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지를 않나 항변했어야 할 자리에서 웃기만 한 것이 못내 분하고 억울해 잠들지 못한 채 밤새 이불킥을 해 종아리에 알을 심은 채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다.

암수술과 항암치료의 경험도 이쪽으로 분류되었다. 당연히.


암을 발견하며 그와의 이별기간 동안 생생한 경험을 글로 남겨두려 했던 것은 어쩌면 다시는 못 올 지점이라 여겼기 때문인지 모른다. 경험을 공유하는 용기보다 한 번의 경험일 거라는 착각 혹은 바램이 이면에 숨어있기에 흠뻑 빠져 글로 남기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방사선치료가 끝나고 1달이 지나자 꼼짝 못 하겠던 날들의 수는 하강하고 제법 움직임에 힘이 실려 활동반경도 넓어졌다. 거실 창에 기대 ‘저기 저 거리를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했던 난 얼마 전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헬스장에 도전했다. 날이 너무 덥기도 하니 러닝머신에서 걷고 뛰기를 실행해 보기로 한다.

제법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걷고 뛰고를 반복하며 한 번에 5km를 찍었다. 은근한 기대가 생긴다.

이번 여름휴가엔 어디로 가볼까?

(몇 년 전 완주했던) 마라톤 10km를 접수해 볼까?

연달아 이틀째에도 비슷한 성과(?)를 보이기에 설레발은 또 여기저기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수술 후 6개월이 되어 추적관찰을 위해 유방mri, CT 등 검사를 실시했고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아침 손에서 컵이 미끄러졌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마주 앉기를 즐기는 교수님께서 멋쩍은 웃음소리를 내며 옆에 앉으라 가까이 불렀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수술 전 없던 석회가 발견되었다며 몇몇 설명을 해주셨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수술 혹은 조직검사 후 결과에 따른 조치 이렇게 두 가지 경로가 주어졌다.

또 수술이요?

두 번은 오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가 보다. 순간 멍해졌다. 교수님께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 말씀드리고 진료실을 나왔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여름휴가를 꿈꾸던 어제의 호기롭던 나는 온데간데없다.


그리하여 이번 여름휴가는 병원행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기념 휴가도 병원이었는데 말이다. 둘 다 내가 계획했던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휴가지이다. 어디 뭐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가 만은…


암은 집중추적기간이 기본 5년으로 유방암 2기의 5년 예후를 본 통계적 생존률은 약 90%이다. 이번에 발견된 이 녀석은 집중추적관찰기간인 5년 내에 나타났으므로 옳다쿠나 싶다. 남은 4년 6개월을 무사히 보내고 생존그룹에 속해 통계적 수치가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숫자임을, 정말 그냥 숫자이길 바래본다.


수술을 준비하러 각종 검사실로 향하는 내 마음은 예전과 달라진 요즘의 집중호우같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피를 뽑는다. 채혈 시 오른팔 한정으로 혈관을 쓰고 있는데 혈관이 부실한 내 팔은 온통 피멍이다.

팔십이 넘어도 늘 자식 걱정인 부모님께는 수술 후 말씀드리는 것으로 잠정적 결정을 내려본다.


수술실 앞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 내일도 달리자.

혈관이라도 건강해져라.

내딛는 걸음마다 주문을 건다.


수술침대에 실려서 지나갔던 기억을 뒤로하고 수술전 검사실로 향한다.







더하기.

다음 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수술입니다. 연재는 한 주 쉬겠습니다.

건강히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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