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그리고 도전

암환자의 창의적 노화

by Psyber Koo

암병원 7병동.

지난겨울 첫 암수술로 입원했던 병실과 같은 병실이라는 것을 마취가 깬 뒤 잠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중 알게 되었다.

수술은 지난번과는 달리 당일 아침 8시 내원하여 일일수술실에 입성하였는데 항암을 거치며 혈관이 약해져 있는 터라 전신마취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혈관을 찾느라 한참을 소요했다. 어찌어찌 찾아낸 혈관은 간호사가 뭘 넣을 때마다 아팠다. 항생제반응등 몇몇 검사를 거친 뒤 집도하실 담당교수님께서 설명을 위해 오셨는데 유달리 에너지가 넘쳐 보여 안심이 되었다. 수술실은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고 마취과 교수님의 설명과 안내에 따라 시간은 숭덩하고 잘려나갔다.

수술 후 마취가 깨는 과정 중에 바이탈에 문제가 생겼는지 간호사가 교수님을 호출했고 마취과교수님이 오셔서 한참 어쩌고 하시더니 괜찮다며 돌아가셨다. 춥고 온몸은 불편했다. 또.

수술실을 나와 기다리던 가족과 상봉하고 병실로 이동되었다. 잠들면 안 된다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는 것을 보니 내가 자꾸 눈을 감으려는가 보다.

이때부터 보호자 둘은 번갈아가며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2시간을 채워야 하다 보니 ‘아 맞다! 그거 알아?’라며 온갖 시시콜콜한 별별소재를 끌어다 집중하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예상수술시간 보다 더 걸려 늦게 도착한 나에게 초조했을 그간의 마음을 쏟아내려는 듯 빠르게 번갈아가며 아무 말 대잔치에 참가한 두 출연진은 대화장면에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집중하는 내 특성을 십분 활용해 깨우려는 노력이었다.

수술실에서 병실로 실려와 침대를 이동하며 지난번 수술처럼 가슴압박을 위해 같은 모양의 써지 브라를 하고 있었으나 배액관은 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수술 통증으로 아픈 와중에도 덜렁 배액관이 없는 몸으로 이동하니 어찌나 가벼운지. 경험의 횟수 1 증가와 비례하여 병상나이도 1 증가하였다.

한껏 부풀어 멍들상을 예약하고 있는 바늘을 빼고 없는 혈관을 뒤져뒤져 간신히 찾아 바꾼 주삿바늘까지 빼자 생기가 조금씩 돌기 시작한다. 같은 병실에 비슷한 모양새로 또 눕다니 참 별로다 싶은 이 와중에 뭔가 익숙한 듯 낯선 이 상황이 신기하고 별일이네 싶다.




암은 삶의 면면을 무너뜨리는 에너지를 지녔지만 동행하면서 알게 된 것은 또 한편으로는 그간 내 스케줄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시도해 생의 에너지를 느끼게끔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낮에는 직장에 묶여있느라 문화의 날을 한 달에 한번 그것도 저녁시간으로만 정하는 한정적인 삶에서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낮시간 예술참여 활동(판화, 수채화) 등 낮 문화예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생기를 충전하는 곳이 각기 다르겠지만 난 한발 떨어져 마주하는 것이 기본인 관(미술, 박물, 도서 등등)을 좋아하는데 방사선치료가 끝날 즈음 체력이 조금씩 돌아오자 이용자가 많은 주말이 아닌 평일을 활용하여 사람들 틈에 쓸리지 않고 유유자적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예술에 대한 식견이 좁아 마주하여도 의미를 못 알아차릴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주어지자 이 허기를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허락하고 예술적 욕망이 보글보글하는 지금 때마침 지리적으로 가까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도슨트양성 교육프로그램 공고가 났다. 심미적 삶을 추구하는 내게 예술과의 거리를 좁히고 허기를 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수술을 앞두고 지원서를 넣어두었다. 합격발표일은 수술 다음날이므로 수술 후를 기대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회복을 종용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퇴원 후 면역요양병원으로 입소하는데 연락이 왔다. 수술부위를 쫑여맨터라 팔딱거리며 환호를 지를 수 없었지만 수강생으로 선정되었다!


현재를 이어갈 수 있게 노력해 준 과거의 나를 사랑한다. 지원동기 및 계획 등을 써야 하는 조금은 귀찮고 번거로운 상황을 밀쳐내고 다정함을 시연한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로 준 것이다. 스스로에게 베푼 다정함 덕분에 현재의 나는 미래를 꿈꾸며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해 충실히 노력한다.

그랬다. 교통사고처럼 만난 암 앞에서 멈추기보다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대하게 된 거다. 암투병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암흑 같은 이 길에서도 인생은 여전히 질문을 해왔으며 나는 멈추지 않고 내 나름의 답을 해나가는 중이다.


도슨트양성 수업 첫날이다. 앞으로 8번의 강좌가 준비되어 있다. 배움이 허락된 수강생은 언제나 기쁜 자리이다. 지금 도슨트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생 선정이 뭐 대단하다고…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암환자에겐 욕망하는 것부터 시도하는 이 모든 것이 기회고 도전이며 축복이다.

내가 꿈꾸는 노화는 이렇게 창의적이고 예술성 담뿍 담은 삶을 사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암이라는 명사에 얽매이지 않고.


혹여 나처럼 암 같은 불의의 사고와 동행하거나 겪지 않을 경험을 하고 계신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시도. 욕망 같지도 않은 소소한 1차원적 욕망을 말하며 이 경험을 공유하는 이유는, 그 어떤 상황에 놓였더라도 우리는 꿈꿀 수 있으며 나아갈 수 있으니 부디 지금 힘겨운 상황에 놓인 그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기를.

도처에 놓인 작은 보석들을 부디 외면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꿈꾸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채울 수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욕망함은 일종의 도전이다. 크기나 실현여부와 상관없는 1차원적인 단순한 욕망일지라도 말이다.

온 세상이 요동치는 여름이다.

지금 당신에게 딱 맞는 도전이 강림하였기를!





쾌청한척 하고 있는 무더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경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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