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응원의 복숭아
여름은 매력적이다. 열기와 폭우가 널뛰듯 오락가락해 탓할 곳 없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하다 싶은 날들이 이어지는데 이때 본심을 슬쩍 건넨다. 주머니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꺼내듯 지금을 이겨내라고 응원하는 열매들이 한아름이기에 요망진 이 계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참외, 수박, 포도, 복숭아, 자두, 무화과 등등 각각의 매력을 지닌 과일을 즐기다 보면 폭염은 어느새 한풀 꺾여 있다.
예상치 못했던 한여름의 수술로 쉼은 또 늘어났다. 수술 후 이 주 가량 쉬었는데 이때다 싶었는지 달리기로 고개 들려했던 근육들은 다시 한껏 늘어지는 것 같다. 이러다 정말 ‘엉덩이근육상실증’이라도 걸릴 것 같아 젖은 신문 같은 몸을 일으켰다. 한 시간 남짓 다녀왔나? 산책 후 발은 온통 물집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반창고로 도배된 발에는 피로감대신 화가 붙어있었다. 한 달 동안 주 3회씩 매번 적어도 5km씩을 달렸는데 열흘 쉬었다고 살이 이렇게 물러질 일이냐 말이다. 수술로 인해 몸만큼 마음도 컨디션은 바닥으로 돌아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거부하기 시작한 것들이 있는데, 주로 먹거리에서 거부를 당하면 뜻 모를 서운함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아는 맛을 거절당하는 기분이란…
내겐 복숭아가 그중 하나이다. 어느 순간 피부발진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해가 거듭하니 만지지 않았음에도 경보알람이 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선함에 옅게 얹은 달콤한 향기와 분홍빛 말그레한 과육 앞에서 어떻게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가 말이다. 마스크와 비닐장갑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오니 억울하기 그지없어 눈물이 복숭아처럼 나올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복숭아 과육이 아니라 털에 반응하는 양상이라 고양이손이라도 빌리면 이 향긋함을 누릴 수 있다. 그리하여 나의 여름은 털 없는 청도복숭아부터 계절 내내 복숭아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단 고양이 손 대신 짝꿍손을 빌리다 보니 청도복숭아 시기가 끝나고 털복숭아가 시작되면 매일 몇 알씩 까실한 껍질을 밀어내는 그 손에는 물집 마를 날이 없다. 이렇게라도 이 향기를 허락케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녹음이 짙어 검어진 여름 저녁 다정한 사람이 잘 다듬어둔 말끔한 복숭아를 한입 베어문다. 다음날 멀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나를 위해 껍질을 벗겨 한껏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 이 한통은 아픔으로 일그러진 몸을 채우고 보송송한 마음으로 하루를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여러 종류의 과일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만물이 빠르게 자라나고 있다는 것일 테다. 뜨거운 여름햇살은 가리는 것 없이 공평하다. 그렇게 쉬지 않고 열심히 덥고 또 부단히 키워내고 있다. 거기에 나도 포함된다 생각하니 이 계절에 서 있는 나는 무슨 나무에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삶의 의미를 내 안에서 찾지 말고 세상을 바라보라 했던 어느 책의 한 구절을 곱씹어본다. 아삭한 복숭아풀잎향기가 입안에 가득 맴돈다. 멀끔히 바라만 보지 않아도 되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