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고 산거 맞아요?
계절과 상관없이 옷방에서의 난 늘 그 모양이다. 그득한 옷걸이들 사이에 서서 비틀어진 고개를 한 손으로 받친 뒤 올려다보며 갸우뚱거리기 일쑤다.
늘 그랬듯 도대체 뭘 입고 다녔나 싶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 옷장을 정리하며 몇 해 전부터는 덕지덕지 쌓아 둔 숨겨둔 욕심인가 하는 마음에 같은 계절을 세 번이 지나도록 손이 닿지 않는 옷은 붙잡아두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재활용으로 버리는 옷은 정리할 때마다 한 자루가 된다. 끙끙거리며 옷자루를 들고 분리수거지로 향하며 온갖 질타를 퍼붓는다. 어째서 이토록 바보같이 버릴 것을 사모았단 말인지. 모으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혐오의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지만 별반 다를 거 없이 또 우연히 들린 옷가게에서 어딘지 모를 비슷한 옷들을 고르며 즐거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혐오를 넘어 애잔함이 몰려온다. 고르고 골라 손에 들린 쇼핑백에는 아마도 그제 버린 그 옷이 이런 스타일이었는데 둘둘 말아 매몰차게 버리고 이걸 집고 왔다니… 이렇게 옷장 앞에서 내 감정은 무한 반복되는 롤러코스터다.
두 번째 수술대에 올랐을 때는 항암치료로 가용할 수 있는 혈관이 얼마 없어 간신히 바늘을 꽂았고 수술 전 몇몇 약을 투여하면 혈관통이 느껴졌다. 마취과 교수님께서 수면마취 후 전신마취가 이뤄진다 설명하며 주사액을 넣었을 때도 아파서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잠이 올 거라는 교수님의 말과 상관없이 순간 혈관이 이렇게 아픈데 못 깨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려움에 대한 논리나 상관을 따져보기도 전에 잠이 들었고 회복실 베드에 뉘여 있었다. 덜덜 떨리는 추위는 살아났다는 반증이었으므로 옷을 입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퇴원 기념으로 만난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 맥락 없이 예쁜 원피스를 사고야(지르고) 말았다.
계절에 맞는 옷 꺼내두기.
세 번의 계절동안 손이 가지 않으면 보내주기.
하나 들여오면 하나 보내기.
등등.
몇몇 기준으로 옷장을 관리하는데 여전히 빡빡하다. 하나 들였으니 하나 보내야 하는데 고민이 많아진다.
이걸 보내야 하나? 저걸 보내야 하나…
그러다 아직 계절은 한창인데 방구석 패션쇼가 열렸고 쌓인 옷들 위로 수선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구매 시 수선했으면 좋았겠지만 뭐 나름대로 괜찮다 싶어 그냥 가져왔고, 몇 번 입다 큰가? 싶은 마음에 걸어둔 거 같았다. 다행히 내가 소장한 브랜드는 본사 웹사이트에 직접 수선접수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안내된 순서에 따라 소장품을 하나씩 찍고 각 제품명을 검색해 수선등록을 하니 다음날 택배로 수거되었다.
평균보다 작은 체구인 내가 그간 꾸역꾸역 기성품 사이즈로 걸쳐 포대자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모두 내 요청에 맞게 줄여져 돌아왔고 새 옷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은 덤이었다.
엄마는 옷을 짓는 사람이었다. 결혼 후 일을 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언제나 멋쟁이었다. 내 어린 시절은 딸이 천대받던 때라 서운한 일도 많지만 또 한편 딸이 귀한 집안이라 몇몇 호사를 누렸는데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철마다 예쁜 원피스와 투피스를 지어 주셨다. 작은 나를 앞에 두고 줄자로 치수를 재는 엄마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점점 자라면서 줄자를 든 엄마를 바라봤던 아이의 마음은 밖에 나가 놀고 싶어 몸이 들썩거렸고 줄자와 실랑이가 일기도 했다. 지난 계절보다 자랐을 나를 요리조리 돌려보는 엄마는 여러 번 치수를 재고 노트에 썼다. 그 당시의 몸에 딱 맞게 지어주셨기에 다음 해에는 거의 입지 못했다. 꼭 맞게 예쁜 옷은 내게만 한정되었으므로 철퍼덕 거리며 마구 입었던 것 같다.
엄마가 지어주신 원피스는 이제 없지만 내게 맞게 수선해 입은 옷을 통해 그 시절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감히 가늠해 본다. 공장이 정해둔 사이즈가 아닌 작은 체구인 내게 꼭 맞는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나를 맞추려는 노력을 과하게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치수를 재고 옷을 지어주시던 엄마는 어쩌면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맞추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단다.
첫 암 수술 이후 매일이 노심초사인 호호할머니 우리 엄마가 보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