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그리고 취미

암환자가 아닌척 새 그룹에 속하기

by Psyber Koo

예의와 예술은 무조건 예스다. 관계에서 오는 아쉬움이 최소화되도록 하는 것이 ’예의‘, 정서통장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예술‘이라 생각한다. 이 두 카테고리는 삶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는 나의 욕구를 조금씩 채워주어 내 일상을 한결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11살이 되던 해 지역의 큰 체육행사를 준비해야 했던 학교의 학생이라 운 좋게 대상자로 선정되어 금관악기인 유포니움과 트럼펫을 배웠는데 행사현장에서 여러 곡을 연달아 연주하기 위해 방과 후 반복연습하며 악보를 외워 무사히 치렀던 경험이 있다. 음악으로 인한 갖가지 감정과 차곡차곡 쌓인 노력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일상에서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잊지 않게 했고, 소녀가 자라 엄마가 된 뒤 일과 육아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로 플룻과 첼로를 배울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플루트가 어린 아들의 취미가 되고 학교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이 친구가 성인이 되면 음악이 주는 휴식을 간직한 청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그 시절 방과 후 음악실에 모여 연습했던 나를 보듯 내 아이를 다독여가며 오케스트라 연습실로 보냈다. 이 무렵 나는 진짜 내가 좋아하는 악기인 첼로를 배우며 언젠가 아들과의 듀엣을 꿈꾸기도 했다. 이제 그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를 상상하며 꿈꿀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곰실곰실해진다. 실력도 끈기도 없어 악기연주가 주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양껏 채우지 못한 나는 대안으로 지역교향악단의 정기연주를 챙겨보는 것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있었는데 암치료에 들어가면서는 활동이 제한되어 이마저도 놓았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수술 후 반년이 지났고 감사하게도 활동이 가능해져 7월 말경 여름의 한가운데 열리는 오케스트라공연 관람을 시도했다. 다시 찾은 예술의 전당은 내겐 정말 ‘예술‘이었다.


방사선치료가 끝난 지 이제 막 2달을 채우고 있는 터라 머리카락도 어느 정도 자라났다. 2-3센티미터의 반삭정도의 길이로 자랐는데 잘랐을 때와는 달리 항암제로 인해 곱슬머리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부숭부숭 밤송이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꼬불거리는 머리가 불상을 닮은 것 같아 뭔가 어색했다. 그래도 얼핏 보면 스타일링한 듯한 오묘한 인상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여름이라 덥기도 해서 가발이나 모자를 쓰기보다 조금 다듬은 뒤 그냥 다녔는데 마침 연예인 중 한 명이 반삭스타일링을 선보인 이후라 대면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덜 따가웠다.


무엇이든 그것에 임하는 태도를 우선으로 중요시 여기기에 나의 이 꼬불반삭 헤어에 임하는 태도는 비교적 덜 어색해했고 애정을 담으려 노력했다. 예기치 못한 재수술 후 또 번쩍하고 일어난 나를 응원하기 위해 멀리서 와준 친구는 생에 처음 해보는 반삭스타일에 어울릴 거라며 선글라스를 선물해 주었는데 이것까지 장착하면 암환자로 보기는 힘든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쯤 되니 ‘암환자’ 타이틀을 떼고 안 아픈 사람으로 일상을 지내며 살고 싶어진다. 살아있는 동안 에이징이 멈출 리 없으니 실현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이다.




친구 초대로 찾은 생애 첫 지리산. 지리산재즈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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