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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19. 2020

형편없는 글을 시작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 작품은 졸작에 불과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은 작품보다 더 졸작일 수는 없다! 완성된 작품은 최소한 탄생이라도 했다. 분명 대단한 명작은 아닐 것이나 그래도 노쇠한 내 이웃여자의 유일한 화분에 심어진 화초처럼, 초라하게나마 살아가고는 있는 것이다. 그 화초는 이웃여자의 기쁨이다. 그리고 종종 내 기쁨이 되기도 한다.
내가 쓰는 글, 나는 그것이 형편없음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읽은 한두 명의 상처 입은 슬픈 영혼은, 한순간이나마 더욱 형편없는 다른 일을 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내가 만족하는가 만족하지 않는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내 글은 어떤 방식으로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생 전체가 그러하듯이.

45p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봄날의책


저는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하는 가정주부입니다. 일상적인 삶, 그 안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려 합니다. 아주 사적인 기록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부분 평범한 일상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기까지 분투해온 기록이기도 합니다. 


1. 저는 모든 것이 몹시 느린 아이로 태어나, 평범하지 못해 다소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소원이었던 무던한, 여자아이다운 이름조차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결국 유년의 경험이 지배적이라고 하지요. 제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도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2. 되는 일이라고는 없었던 이십 대. 저의 청춘은 거듭된 실패 끝, 마지막까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실패는 분명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할수록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기대도 자꾸만 잃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어쩌면 너무 쉽게 포기해버린 제 탓인지도 모릅니다. 절실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면, 역시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났다는 그런 멋진 이야기는 제가 살아온 삶이 아닙니다. 일기장에조차 적고 싶지 않았던 시시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완벽한 삶을, 빈틈없는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면. 시시하고, 부끄러운 인생의 기록이라도 누군가를 위하여 꺼내어 두고 싶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어떤 이의 청춘에 아주 잠시, 아주 작은 위로라도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3. 스물 여덟. 준비도 없이 덜컥 엄마가 되었습니다. 커다란 바퀴가 속절없이 내리막을 굴러가듯 정신없이 아이를 키웠습니다. 저의 좌충우돌 육아의 경험을 공유하며 엄마가 처음인 초보 엄마, 아빠들을 힘껏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4. '내 집' 을 만나기까지, 부동산 시장이라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아찔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두 번의 자취, 두 번의 고시원, 다섯 번의 전세살이를 경험하며 '살기 좋은 집'에 대한 나름의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입니다만, 오늘도 '내 집', 내지는 '내 방'을 찾아 헤매고 계시는 분들께ㅡ타산지석으로나마ㅡ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적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부동산은 잘 모릅니다. 5. 여행하고 기록합니다. 6. 좋은 책을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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