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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2. 2020

Once upon a time in honeymoon

결혼 전에는 기혼인 선배들을 만나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것 저것 묻곤 했는데, (일단 전반적인 반응은 귀찮고 시니컬함. 지금은 깊이 이해하는 바다.) 대부분 결혼식은 다시 안 하고 싶으나 신혼여행은 다시 가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올해로 결혼 7주년, 나에게 누군가 허니문의 조언을 구한다면 뭐라고 할까? 나에게는 어떤 여행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




자식 둘을 한 해에 결혼시키는 건 하객들에게 민폐이니 올해는 오빠 먼저, 우리는 내년이 좋겠다는 핑계로 막내딸의 이른 결혼을 일 년이라도 늦추어 보려던 아빠의 심술과, 구정 설 전까지는 새해가 아니니 해를 넘기지 않은 거라며 편 들어준 엄마의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좋은 계절을 모두 두고 춥고도 어두운 2월의 오후를 골라 식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남편이 부산 현장에 있던 관계로, 결혼 준비도 혼수 준비도 주중 퇴근 후 혼자 열심히 발품을 판 뒤에 주말에 다시 같이 가서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해야 했다. 회사에서는 신입이라면 무조건 거쳐 가야 할 연말 송년회 댄스 조로 차출되어, 점심 시간도 반납하고 얼어붙은 양재천을 건너 매일 거울 달린 춤 연습실에 갔다.


왕복 세 시간의 출퇴근과, 근무 외 시간을 오롯이 바친 춤 연습과, 결혼 준비가 동시에 진행되던 나날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인 것일까? 열심히 준비한 댄스는 차질 없이 큰 웃음을 이끌어냈으나, 결혼 준비는 건성 건성 진행되었다. 플래너 없음. 스드메 중 스 생략, 평생 한 번 입는 웨딩 드레스도 식장에 딸린 대여샵에 딱 하루 방문해 서너 벌 입어보고 일사천리로 결정, 그 좋고 편리한 모바일 청첩장도 없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객 초대.


휴가 직전까지 업무 마무리 하랴, 퇴근 후 매일 저녁 사고 청첩장 전달하랴, 그맘때의 누구나가 그렇듯 나 역시 눈코뜰새 없이 지냈다. 설렘보다는 숙제 같았던 예식을 끝내자마자 너무 멀리 떠난 여행에선 파김치가 되어 쉬기 바쁠 수밖에. 겨울이라 여름옷은 인터넷에서 주문해 비닐도 뜯지 않고 가져갔다. 사진을 보면 고급 리조트에 어울리지 않는, 오천원도 안 할 것 같은 싼티나는 커플 티셔츠 같은 걸 조옿다고 입고 있다. 면세점 문 닫은 밤에 출국, 부모님과 친구들 선물로 뭐라도 사들고 돌아가야 하는데 휴양지에 그럴듯한 공산품이 있을 리가. 돌아와 백화점에서 세금 다 내고 선물을 샀다는 웃픈 사연. 아! 그래서 허니문은 어땠느냐 하면..


행복했고 충만했다.


얇은 덧문 하나를 열면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가 있었다. 숲과 바다 뿐인 섬의 검은 밤 벌어진 커튼 사이로 들어온 달빛이 밝아 잠을 깼다. 테라스로 나오니 커다랗고 둥근 달이 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너른 바다 가운데로 달빛이 일렁였다. 한참을 서서 달이 비추는 바다를, 바다가 비추는 달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는 실감도 그 밤의 달빛과 검푸른 대양의 바다도 그저 꿈처럼 느껴지는 현실의 밖에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돌아가야 할 일상도 꺼내보지 않은 채로 함께, 있었다.


엄마가, 아빠가 되어 7년을 살아오면서 우리 부부가 서로를, 서로만을 바라보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나에게 허니문은 그런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극히도 현실적인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 켠에 간직해온 꿈결같은 시간. 서로가 그토록 사랑했던 기억을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책갈피. 나에게는 그런 의미라고 답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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