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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2. 2020

A long way. 길은 계속된다

현 남편, 전 남자친구가 부산 현장에 있을 때 부산에 내려가 함께 여름 휴가를 보냈다. 여기는 한국이고 나는 여성이며 결혼하기 직전 해였다. 엄마, 아빠의 여름 휴가에 꼭 맞추려면 이글거리는, 어딜 가나 붐비는 7말8초로 계획할 수밖에.

이전까지는 매주 남편이 서울로 올라왔을 뿐 내가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아침 비행기를 예약해 두고는 늦잠을 자고, 택시를 잡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 비행기를 놓쳤다.

그때까지 차 안에서 시원하게 방귀도 뀐 적이 없었다. 설레는 목소리로 지금 어디야? 하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화장실 때문에 비행기를 놓쳤다고 고백하는 심정은 참담했다. 다행히 무사히 다음 편을 잡아타고 부산에 내렸고, 즐거운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남편이 생활하던 부산의 강서 택지지구에서 당시 새로 생긴 '가거대교'를 건너면 바로 거제였다. 엄마 아빠를 따라 통영에는 몇 번 가 보았지만, 가까운 거제의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었다. 흠, 남자친구랑 봐서 그랬을까?


부산에서 하루, 거제에서 하루를 묵었다. 유명한 맛집이라는 해물찜 가게 앞에서는 땡볕에,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극강의 매운 맛 해물찜에, 매운 맛에는 쥐약인 나는 찜질방에 온 아저씨처럼 손을 닦는 물행주로 연신 뒷목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마지막 밤만은 뭔가 근사하게 보내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못 할 때였고 (그때 이미 4년이나 만났는데도.) 인 당 만 얼마짜리 무한리필 게장 집에 데려간 남편에게 괜시리 툴툴거리다, 막상 게딱지는 열심히 뜯고 나온 생각이 난다.

부산, 거제, 통영으로 여행을 마무리한 우리는 400km가 넘는 거리를 함께 차로 달려 서울로 올라왔다. 에어컨을 틀어도 내리쬐는 열기를 피할 수 없는 한낮의 고속도로였다. 지금은 해체해 버린 '시스타'의 여름 노래를 열정적인 댄스와 함께 따라 부르며 400km, 다섯 시간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 여름이 벌써 8년 전이니, 우린 지금 얼마나 더 멀리 온 걸까? 아직도 갈 길이 꽤 먼데, 여보. 우리 지루하지 않게 가봅시다.

당신 마누라는 먹겠다고 기다리는 거, 고통스럽게 매운 맛은 질색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겠지요? 그리고 여행의 끝은 낭만으로 부탁합니다. 나도 차 안에서 방귀는 조금 자제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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