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비추일 때

영혼의 깨어남을 소망하며

by 진성민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새벽에 일어나 멀리 북한산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거나, 아침해가 뜰 때쯤 집 근처 천변을 산책하며 철새들이 분주히 아침을 시작하는 것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내게는 지금처럼 춥지 않고 덥지 않은 시기가 딱 좋은 것 같다.


햇빛이 뜨기 전에는, 멀리 동트는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혹은 보랏빛으로 물들다가, 서서히 분홍빛이 되었다가 결국 금빛 광채가 퍼지면서, 해가 능선위로 떠오른다. 산책하면서,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아침부터 참으로 기분좋은 일이다. 예전 군 복무 할 때, 철야행군을 하고, 새벽에 10분간 휴식하면서, 군장위에 앉으려고 하다보면, 등뒤에서 피어나던 체온의 열기와 찬 공기가 만나서, 군장위에 하얗게 서리가 앉아 있고는 했다. 해가 뜨기 전 여명이 밝아올 때 쯤이 가장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군으로 난 땀들이 무럭무럭 올라오던 그 어스름한 새벽빛을 맞으며, 빨리 해가 뜨기를 기다렸던 젊은 군인들의 땀 냄새가 지금도 느껴지는 듯 하다. 마침내 해가 떠오를 때, 밤새 추위와 땀이라는 상반된 조건속에서 맞이하던 그 햇빛은 얼마나 찬란했던지.

20251102_071642.jpg 멀리 겨울 철새들이 햇빛의 줄기속으로 날아가고 있다.

새벽을 지나 천천히 밝아지는 하늘빛을 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하늘은 거대한 캔버스이고, 구름과 빛은 그 물감인 듯, 누군가가 멋진 그림을 이렇게 내가 자는 사이에, 매일 매 순간 그려놓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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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카메라를 좀 배우려고 중고 캐논 카메라를 사서 매뉴얼을 보면서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는 중이다. 자동차 살 때 주는 매뉴얼 만큼이나 두꺼운 그 설명서를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기본적인 용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전체 문장의 정확한 해석도 어려웠다. 기능과 조작법에 대한 설명은 또 어찌 그리 많은지. 그래서 결국 자체적으로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하면서 얻어진 사진의 결과물을 비교해 보는 식으로 기능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기능과 기술적인 특성들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빛"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에 이르렀다.

언제 (어느 시점에), 어디서, 무엇을 찍는가가 중요한데, 이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결국 빛의 양과, 각도라는 것.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찍히지 않는다. 노출 시간도 결국은 얼마나 빛을 받아들이는가를 결정짓는 것이고, 그 빛이 거의 수평으로 비추는 아침햇살인지, 정오의 수직으로 내려쬐는 빛인지에 따라 사진의 색깔과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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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속에서, 빛을 마주하고 설 때가 모든 피사체는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표지 사진은 예전에 모로코 라밧 (Rabat) 이라는 도시 (모로코의 수도)에서 아침마다 산책하던 해변의 풍경이다. 오래된 성벽으로 감싸여있는 구시가지 (Kasbah des Oudayas)가 멀리 보이는 해변이었는데, 가을 이후에는 날씨가 흐려서 아침에 해뜨는 것을 보기가 어려웠다. 가뜩이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들로, 출장중에 처리해야 하는 긴박한 문제들 생각등으로 골치아픈데, 날씨까지 우중충하면 산책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도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에는 거짓말처럼 해안성벽과 하얀 집들 위로만 햇빛이 비췄다. 이른 아침이라 인기척도 거의 없는 조용한 바닷가에서 그걸 혼자 바라보면서, 순간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비추이면서 평온한 느낌이 들었던 강렬한 기억.


머리위로 비추이는 빛 한 줄기에도 우리는 이렇게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내 영혼에 비추이는 빛줄기들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평온할 수 있을까? 아침에 빛 속에서 뿌옇게 보이는 저 웅장한 산줄기들 속에는, 실제로 아주 작은 빛 조각들이 잎마다, 가지마다 달려 있음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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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아침 모습과, 빛 조각들.

삶의 후반부쯤에서 돌아보니 모든 이가 빛 속에 있었고, 모든 것은 각자의 색깔로 빛났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까지 빛을 향하며, 빛 속을 걸어갈 수 있기를. 나 자신은 빛을 내지 못해도, 빛을 받아 함께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늦은 가을 찬란한 빛속을 걸으며, 우리 모두가 작은 빛 조각들로 이 세상을 함께 채워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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