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나는 것들로 살다

올해 텃밭농사를 마감하며

by 진성민

올해 초, 운좋게도 집 근처에 있는 텃밭에 2개 남은 고랑 중 한 고랑을 빌릴 수 있었다. 봄부터 서리가 내린 최근까지, 아침 저녁으로 자주 가보고, 신경쓴다고 썼지만, 역시 초보농부의 한계를 많이 실감했고 그만큼 새로 배운 것도 많았다. 어릴 적 농사지으시는 아버지를 따라 논과 밭을 많이 다니다 보니, 그 흙냄새와 풀냄새가 가끔씩은 생각이 나서였는지, 텃밭에 가서 흙을 뒤집고, 씨를 뿌리고, 작은 싹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역시 모든 일은 기초부터 제대로 배워야 성과가 제대로 나는 법, 의욕만 앞서고 잠깐이라도 게으르면 역시 작물이 잘 자라지 않거나, 6~7월경에는 순식간에 풀밭이 되어 버리곤 했다.

텃밭 주인장이신 이 선생님께서는 80중반의 고령이신데도 불구하고, 내외분이 매주 두 번씩 오셔서 당신들 텃밭도 관리하시고, 나와 같은 초보 농부에게 여러가지 조언도 해주시는 바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 내년에도 내가 또 한 고랑 정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올해 배운 것들과 경험한 것들을 잘 기록해 놓았다가, 조금은 더 나아진 텃밭 농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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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절기에 맞추어 파종하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인 것 같다. 화훼 농장을 오래 해 온 친구말로는, 야채는 하루만 심는 날짜가 달라도, 성장 속도가 차이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땅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 모래밭이나 돌밭에서 작물이 자랄 수 없는 것처럼, 흙이야말로 가장 작물들에게 중요한 성장의 원천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선생님 조언처럼 근처 농협에 가서 퇴비를 사다가 일일이 흙을 삽으로 뒤집고 뿌려서 섞어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는 3월 20일에 처음으로 시금치와 청경채 씨앗을 사다가 작은 둔덕을 만든 다음 손으로 뿌려주고, 흙을 덮었다. 연두색 싹들이 꼬물꼬물 흙덩이들을 비집고 올라오는 것을 기뻐하고 있었지만, 내가 잊은 것이 있었다. 적당한 시점에서는 각자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밀집을 해소하기 위해 솎아 줘야 하는데, 그 시점을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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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도 삐뚤빼뚤, 간격도 너무 촘촘하고, 어디는 휑하고, 어디는 너무 빽빽하고, 그야말로 제멋대로 시작한 씨뿌리기였다. 대파는 그래도 간격을 두고, 줄도 맞추어 심은 덕에 잘 컸지만, 청경채는 너무 작고 벌레들이 많이 먹는 바람에 구멍이 숭숭 뚫린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마나 시금치는 늦게라도 좀 솎아 주었더니 잘 자라서 한 동안 시금치국과 나물이 되어 주었다.

시금치와 청경채, 상추가 지나간 밭에서는 다시 감자와 방울토마토, 고추와 가지 등이 열렸고, 매일 아침 일찍 이슬방울이 젖은 야채들을 따오는 일은 내가 올해 가장 즐거워했던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럴때마다 그냥 씨앗을 몇 개 심거나 잘린 감자 작은 조각들을 땅에 파묻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녹색 잎들과 가지들과, 여러가지 색깔의 야채들을 자라게 하는지, 땅의 생명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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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7월초까지는 근처 나무에 열리는 자두와 살구도 맛보고, 가을이 되면 밭 옆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동글동글, 매끌매끌한 밤들도 주울 수 있었다. 가을이 되면 심어야 할 작물의 종류가 달라지기 마련, 다시 고랑 전체를 뒤엎어서 이번에는 좀 높은 둔덕을 만들고, 김장무와 알타리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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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진들을 찍어 놓는 것은, 파종 시기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그리고 중간 중간 자라는 정도와 상태, 어떤 작업을 했는지도 나중에 알 수 있어서 나름 농사일기의 기능을 한다. 여름에는 풀 뽑느라고 제법 땀도 많이 흘렸지만, 초가을로 접어드니 풀들도 덜 자라고, 잎 채소가 아닌 무우와 같은 뿌리식물들은 해충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보니, 가만히 두었는데도 하루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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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어 낡은 원두막 그늘아래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맞으며 막걸리 한 잔 하는 것도 아주 행복한 일이다. 오래 전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막걸리는 몸쓰는 일을 많이 하고 땀을 흠뻑 흘린 후에 마시는 것이 정말 맛있다. 전에 군 복무할 때도, 대민지원 나가서 벼베기를 하루 종일 하고 나면, 농부님들이 아예 막걸리를 한 말통 (20리터들이 큰 흰색 플라스틱통)을 가져다 주셨고, 가져다 주신 김치와 깍뚜기, 두부같은 음식들로, 지원나갔던 병사들 모두 아주 배부르게, 그러면서도 힘든 하루의 노동을 잘 달랬던 추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올해는 한 번 똑같이, 땀 흘린 후에 막걸리와 두부를 사서 먹어봤는데, 역시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먹는 것과는 다르게, 정말 운치가 있었다. 이런 것도 텃밭 농사가 주는 소소한 행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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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리가 내렸고, 이제는 밭을 다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밭의 작물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자연의 순환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법, 어느 햇볕 환한 늦가을날, 김장무와 알타리무도 거둬들이고, 시래기용으로 무청들을 잘라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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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을 기약하며, 작물별 파종시기 정리. (이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것)


3말~4.10: 감자(6/20~7초 수확): 씨감자 확보(수지감자)

4/20~4/30: 상추, 쑥갓, 로메인, 청경채, 치커리, 시금치, 비트, 양상추, 아욱 (섭씨 15도 이상,미니 비닐 온실 설치 장려)

4/25~5/10: 고추 (매운/안매운 것/꽈리/오이), 피망, 양배추,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 대저, 대추방울, 큰)

열무, 다발배추, 참나물, 순무, 대파, 쪽파, 토란,부추, 곰취, 취나물, 당귀, 생강, 야콘, 호박(마디, 단호박), 참외, 수박, 콜라비, 얼갈이 배추, 들깨, 참깨, 곤드레, 옥수수 외 (씨앗의 2배 흙덮기, 충분한 시비,모종으로 심기)

5/5~5/15: 강낭콩, 완두콩, 서리태, 쥐눈이콩, 대두콩 외

5/10~5/20: 고구마(꿀/밤/호박): 순 확보 (1일 물에 담그기)

8/20~8/25: 김장배추 (불암3호/항암배추/천고마비 등), 무 (배추/무는 모종으로 심을 것), 일반 갓, 여수돌산 갓, 씨앗 파종시는 8월 10일경 직파


올 한 해 이 작은 텃밭 덕분에 온 가족과 이웃들과 야채도 풍성히 먹을 수 있었다. 나 자신 텃밭 노동을 하면서 많은 작은 기쁨들도 얻었다. 그래서 이 흙들이 너무 고맙다. 생명을 품고, 키우고, 열매맺게 하는 토양, 그 자신은 아무말도 없고, 여름의 혹서기와 겨울의 꽁꽁 언 눈발밑에서도 묵묵히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고마운 땅과 흙. 생각해보면, 우리는 결국 땅에서 나는 것들, 바다에서 얻어진 것들로 생명을 유지하는 중이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음식들 역시 결국은, 땅과 바다에서 온 것들의 바뀐 모습들일 뿐, 우리는 흙에서 태어나고, 흙에서 난 것들을 먹고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 변함없는 순환의 한 마디를 나도 나중에는 아름답게 맺고 싶어진다. 석양빛에 빛나는 저 갈대 한 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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