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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담한 편지 May 02. 2024

팀장님, 도시락 한 입만 먹어도 돼요?

회사에서 퇴근 다음으로 기다려지는 시간은 점심 시간이다. 나는 팀장님과의 점심 식사가 즐겁다. 팀장님의 도시락 덕분이다. 팀장님은 매일 정해진 루틴을 중요시하신다. 이는 점심 식사 메뉴에도 적용되는데, 팀장님이 싸 오시는 도시락 메뉴는 단일하게 정해져 있다. ‘전복 내장 비빔밥’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내 전복  내장 비빔밥이다.  양푼이 그릇에 갖가지 나물 반찬과 흰 밥, 전복 내장 소스를 비빔 박자로 비비면 팀장님 표 전복 내장 비빔밥이 완성된다.


어느 날 팀장님이 점심시간에 나에게 비빔밥 한 숟가락을 권하셨다. “유자씨, 한 입 먹어볼래요?” 비빔밥이나 전복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팀장님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네! 잘 먹겠습니다~”      비빔 박자대로 비벼진 비빔밥을 한술 떠 내 입 앞으로 가져온 순간, 에메랄드그린 빛의 탐스러운 전복 내장 비빔밥이 나에게 말했다.


“안녕 유자야, 나는 바닷물처럼 짜지도 않고, 민트초코처럼 달콤하지도 않지만, 은은하게, 하지만 풍부하게 너의 미각을 사로잡을 거란다. 나의 풍미를 감당해보겠니?” 낮고 느리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한 말투였다.  비빔밥의 말은 옳았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묘한 향긋함이었다.


그날 이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비빔밥을 향한 생각도 커져만 갔다.

“어제 먹은 비빔밥 너무 맛있었어요…. 오늘도 한 입만 먹어봐도 돼요.?” 팀장님도 신나셨는지 “맛있죠? 내가 매일 먹는 이유가 있다니까, 항상 여기서만 전복 내장 소스를 사는데 직접 주문해야 하는 곳이거든요. 온라인으로도 안 팔아”라며 소스의 첫 구매 동기, 구입처와 얽힌 에피소드까지 들려주셨다.      


그때부터 나의 “한 입만” 이 시작되었다. 가끔 “한 입만 먹어도 돼요?” 말하기가 민망할 때는 “팀장님, 오늘은 도시락 뭐 싸 오셨어요?” 같은 변형 질문을 하거나, 강아지 눈빛으로 도시락을 빤히 쳐다보는 식의 무언의 언어가 사용되곤 했다.  나의 비빔밥 예찬론이 시작되자, 다른 팀원들도 팀장님 비빔밥을 한 입씩 거들기 시작했다.


“유자씨, 밥먹을 때 마다 ‘한입만’ 하는 사람이에요?” 팀장님이 말했다. “네! 맞아요”

나중에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팀장님이 “유자씨, 한 입 먹을 거죠? 여기 놔둘 테니 먹어요.”라며 내 몫을 미리 챙겨 놓으셨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진행되던 나의 ‘한 입만 뺏어 먹기’는 팀 내 전복 내장 소스 공동구매로 막을 내렸다.

비비면 비빌수록 세상이 즐거워지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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