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FP 동생 취미 #2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 2024.3.26 ~ 2024. 6.16
2024년 3월 26일,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재연의 막이 올랐다. 2021년 한국 초연 때 나를 뮤지컬 회전의 세계로 이끌었던 특별한 작품이 3년 만에 돌아와 무척 반갑다. 그레이트 코멧을 보기 전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도, 그레이트 코멧이라는 작품 이름도, '이머시브'라는 이 공연의 형태도 나에게는 생소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 생애 첫 뮤지컬 관극 후 느꼈던 여운이 무척이나 강렬해 그 기분을 자꾸 느끼고 싶어 몇 번이고 2021년 봄의 유니버설아트센터를 다시 찾았고, 매 번의 공연마다 다른 색깔의 감동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돌아왔다.
그레이트 코멧을 시작으로 다른 뮤지컬 공연을 보러 다녀보니 내가 뮤지컬 입문부터 꽤나 일반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은 특이하고 어렵지만 중독성 있게 귀에 감긴다. 의도된 불협화음이 어우러져 화음을 만들어낸다. 관객석은 원형 무대를 에워싼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음악감독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무대 위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동시에 지휘를 한다.(그게 가능하다니!) 배우들은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심지어 무거운 아코디언 등의 악기를 든 채로 서로 동선을 척척 맞춰 뛰어다니며 연주와 노래와 연기와 안무를 동시에 해낸다.(그게 되다니!)
https://youtu.be/0CXfLpxsEDg?feature=shared
무엇보다도 그레이트 코멧은 이머시브 공연이다.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 참여형 공연, 몰입형 공연이라고도 불린다. 극에서 등장하는 '노망 난 볼콘스키 공작'이 관객에게 불쑥 반지를 건네며 청혼하고, '아나톨'의 비밀 연애편지를 '나타샤'에게 전달하기 위해 관객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일반적인 공연처럼 객석에 앉아 정면의 무대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공연에서 놓치는 부분이 많다. 내내 부지런히 고개를 앞뒤로 돌리며 무대와 객석 전체 여기저기를 적극적으로 둘러봐야 19세기 모스크바에서 아나톨, 나타샤, 피에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머시브의 꽃은 <발라가 Balaga> 넘버이다. '아나톨'의 시원한 선창 '발라가 등장!'과 함께 마부 발라가가 객석 통로를 가로지르면,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박자를 맞추며 발라가를 맞아준다.
https://youtu.be/70Pgnkyo8QI?feature=shared
2024년 3월 26일의 재연 첫 공연에서 내가 느낀 이머시브는 '넘쳐흐르는 에너지의 교환'이었다. 무대 위, 아래, 객석을 누비며 공연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돌아와서 반가운 <그레이트 코멧>에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객석의 사람들은 더 이상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공연 내내 서로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지난 시간 동안 강사라는 내 직업을 무척 사랑했던 이유도 화이트보드 앞의 나와 맞은 편의 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힘이 되는 에너지를 주고받는 순간이 엄청나게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지루한 공부를 주고받으면서도 좋은 에너지가 나올 수 있는데, 공연이라는 멋진 상황에서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는 얼마나 더 크겠는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말 그대로 immersive 한, 어떤 진공 상태에 깊이 몰입해 있는 듯한 기분이었고, 그랬기에 커튼콜 후 음악 감독이 마지막 음을 마치고 무대에서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거의 모든 관객이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환호했다.
2024년 3월 26일 저녁의 <그레이트 코멧> 재연 첫 공연,
2021년 5월의 <그레이트 코멧> 마지막 공연 당일로 시간이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나 아쉽고 보내기 싫었던 마지막 공연의 바로 다음 날 마법같이 다음 공연이 나타난 것 같기도 하고...
그날의 무대에서는 객석으로,
객석에서는 무대로,
서로 뭉클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기다려 왔어 그댈 만나길!
https://youtu.be/qrtbZJVj9L0?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