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FP 동생 이야기 #9
아빠와 고모가 통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상심에 빠져 계신 고모에게
아빠는 힘을 주고 싶어 하셨다.
"누님, 누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한 번 쭉 쓰면서 시간을 보내봐요.
손녀딸에게 이야기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말하듯이 쉽게.
꼭 써요, 응?"
'에이, 아빠는 나한테도 허구한 날
논문 써라,
일단 써라,
머릿속에만 있는 건 소용없다,
머릿속에 있는 걸 글로 꼭 써라,
완벽하게 쓰려고 하지 마라,
일단 써라!
하시더니, 칠십 넘은 고모한테까지 글을 쓰라고 하시네.'
속으로 킥킥거렸었다.
십 년도 훨씬 지나 잊고 있었던 일인데
아빠를 잃고 나서
저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서 아빠 말대로 일단 써 보는 중이다.
경계심도 겁도 많은 나로서는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업로드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아빠가
"그렇게 질질 짜고만 있지 말고 일단 써라!"
라고 하실 것만 같아서,
'일기'와 '보여주기 위한 글'의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것 같은 글을 정리하고
용기 내어 발행 버튼을 눌러보고 있다.
'일단 쓰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힘들 때 글을 쓰면
힘든 감정이 조금이나마 해소된다는 것도
나는 아빠한테 배웠던 거다.
이렇게 '일단 쓴 글'을 내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사실 아빠인데.
내가 쓴 글을 메일로 보내드리면 무조건 오버를 하며
'진짜 네가 쓴 거냐? 나는 어디서 베낀 줄 알았구먼! 아주 잘 썼다! 네가 글재주가 있구나!'
라고 해주실 아빠가 안 계시는 게
여전히 좀 믿기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