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FP 동생 이야기 #8
좋은 죽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79세의 우리 아빠는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두고
목욕탕을 다녀오고
엄마와 둘이 앉아 오붓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가볍게 술 한잔을 하며
포르투갈 여행 중 굽이굽이 외진 골목길을 찾아가 보았던 파두 공연이 참 좋았었지,
지금까지 엄마와 참 재미나게 지냈지 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잠옷을 위아래 세트로 맞춰 정갈하게 입으시고
잠자리에 드셔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아침에 일어나 아빠 얼굴을 본 엄마는
그냥 주무시고 계신 줄 알았을 정도로
표정이 편안하셨다고 한다.
병원 신세 한 번 안 지고 가신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다, 복이 많은 것이다,
노인으로서 가장 바라는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언니도
아빠가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하시기를 늘 기도드렸는데
그 시기가 예상치 못하게 빨리 온 것은 슬프지만
그 방법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언니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고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머릿속에서는 언니의 말을 자체적으로 편집해서 들으며
언니의 말이 무척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기도를 드렸다고?
아빠가 삶을 마무리하시기를?
남겨진 나는 그저 모든 것이 참 야속하다고 느낀다.
아빠의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고 나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도,
응급실도 중환자실도 아닌
장례식장으로 곧장 나를 뛰어가게 만든 아빠도,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언니는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지내오신 아빠가
그 나이까지 어디든 스스로 운전해 다니시던 아빠가
만약에
병원에 누워 기계에 의지하고 정신이 흐려진 상태가 되어 버티셔야 했더라면
그런 자신의 상태를 아빠가 못 받아들이고 무척 힘들어하셨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넓은 마음으로 이 상황이 헤아려지지가 않는다.
그건 아빠 사정이고,
나는 어떤 상태의 아빠든 내 곁에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병원을 오가며 밤이라도 지새우고
아빠의 건강 걱정에 동동거리며
잘 지내볼 수 있었는데,
딸에게 그럴 기회를 하나도 주지 않은 아빠가 야속하기만 하다.
몇 년 전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의 항암 치료 기간에
온 가족이 궁리해 엄마의 입맛에 조금이라도 맞는 음식을 찾아내보고
예민해진 엄마의 짜증을 받아내기도 하고
엄마의 삭발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머니 머리가 꼭 병아리털 같네 귀여워!
라는 내 아이의 말에 온 가족이 잠시 웃기도 하면서
가족과 함께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어쨌든 엄마는 곁에 있으니까,
열심히 하면 이 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일상을 살아갈 힘이 났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아빠가 훌쩍 떠나버리신 상태에서
남은 시간을 살아갈 힘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저기 아빠의 빈자리만 큰데,
어디선가 아빠가 지켜보고 계신다는 말은 크게 와닿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그 '어디선가'가 어딘데?
아빠의 죽음에 대해
노인으로서 가장 바라는 형태의 죽음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죽음이 어떻게 좋아, 어떻게든 살아서 옆에 있는 게 좋은 거지.'
라고 어깃장을 놓고 싶은 것을 보니,
아빠를 진정 위하는 것보다
남겨진 내 감정이 자꾸 앞서는 것을 보니
아직 삶의 내공이 한참 부족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