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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삶 Aug 29. 2020

주변인들이 바라보는 우리

현명한 부부 생활 전하기


어느 날 친한 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ㅇㅇ씨 정말 좋은 사람인 거 알죠? 보기 드문 사람이라 엄청 부러워요~”


여기까지 말했으면, 그냥 기분 좋은 칭찬이었을 텐데

“솔직히 ㅇㅇ씨 덕을 많이 보겠다 생각했어요~”


내가 배우자를 잘 만나서 훨씬 덕을 많이 보고 산다는 뉘앙스의 그 말은 기분 좋은 칭찬이 아니었다. 그 지인이 내 배우자의 여러 면모를 보고 좋게 보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배우자 덕을 많이 보고 산다고 얘기하는 것은 선을 넘은 말이었다.

사실 이런 말을 처음 듣자 마자는 그냥 넘겼었는데, 같은 말도 여러 번 듣다 보니 그날은 뼈가 있는 말로 들렸다.



내가 배우자 덕을 일방적으로 많이 보고 살고 있는가?


결혼하기 전 우리는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주제와 삶의 방식에 대해 논의했고, 다른 사람에게 부부 생활을 어떻게 전할지도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어 본 적이 있다. 골자는 서로의 가족, 지인에게 상대 배우자의 칭찬을 많이 하자는 것. 흠을 나타내기보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자는 것이었다. 삶에 희로애락이 있다지만, 그래도 남에게는 되도록 가십거리를 던져주지 않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배우자도 마찬가지고, 나도 내 가족과 지인들에게 부부 생활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을 때 상대방의 칭찬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아침을 어떻게 해결했냐는 질문에는 배우자가 해주거나 도시락을 싸준다고 했고,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곧잘 들어주고 열띤 대화를 하는 편이라고 했다. 청소도 함께 정해서 열심히 한다고.



이렇게 몇 달 동안 지내다 보니 어째 내 주변 지인들이 나보다 내 배우자를 좋아하며(?), 심지어 내 가족은 불쌍한 ㅇㅇ이..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우자에 대한 흠을 이야기하지 않고, 좋은 점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칭찬이 너무 과도했나? 아니 그것보다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무엇인가 잘못됐다.


배우자가 평균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니까 결혼을 하긴 했지만, 내가 저 사람보다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그들의 말 기저에 깔려있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순히 칭찬에 맞춰 으레, “그래~ 네가 좀 잘해라!” 라며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전통적인 상에 맞춰서 네가 좀 더 헌신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니? (청소나 밥)’ 이런 마음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더 이상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스몰토크처럼 배우자 험담하며 씹고, 나를 올리는 말을 하는 건 또 하기가 싫다. 하면 할수록 결국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증명하는 ‘내 얼굴에 먹칠하기’ 일 수밖에 없다. 그럼 주변인에게 현명한 부부 생활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영혼 없이 말하기
(tmi 생략)



의외로 답은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배우자는 영혼 없이 리액션을 하는 대화법을 자주 구상한다. 그렇다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열심히 리액션을 하는데, ‘오~와~ 좋네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자신의 tmi는 주변인에게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농담은 하지만, 본인의 사적인 부분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리액션을 하는 대화 기술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속을 알 수 없는 대화법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대화 기술 ‘영혼 없이 말하기’는 꽤 좋은 전략인 것 같다. 누군가 우리 부부 생활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그건 사적인 부분이다. 그러니까 “좋아요~ 잘해요~”라는 영혼 없는 리액션 기술을 쓴다면 그냥 ‘아 말하기 싫은가 보네, 재미가 없네, 넘어가야겠다’라고 이어질 수 있다. 좋은 것은 좋다고 담백하게 얘기하면 이러쿵저러쿵 파생되는 말이나 생각을 들을 필요도 없어진다. 내밀하고 친한 지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과도하게 부부 생활을 사사건건 오픈해서 흠이건 칭찬이건 드러낼 필요가 없다. 정말 좋은 일이거나 고민이 되는 일일 경우에만 나눠도 충분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니만큼 우리가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고 알아줄 것이다.


이런 스탠스는 한 번 가지기 마음먹었으면 쭉 유지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나처럼 스몰토크 기계인 사람이 갑작스레 이렇게 영혼 없이 대화를 한다면 ‘얘기 좀 해봐라, 너네는 도대체 어떻게 지내니’라는 질문 폭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처음 마음먹었다면 꾸준히 계속해서 이런 자세를 연습해야 한다. 별다르게 연습할 것 없는 배우자는 늘 그랬던 것처럼 꽤나 담백하게 부부 생활을 얘기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배우자의 이런 성향을 원래 아는 배우자 주변 사람들은 으레 우리가 알아서 잘 살겠거니, 퇴근 시간이 더 빠른 상대방이 고생할 수 있으니 더 잘해주라느니 그런 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이제부터는 주변인에게 우리 부부 생활을 영혼 없이 전하고, tmi 좀 줄여나가야겠다.


연습해야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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