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별로 달라진 사춘기의 풍경

by 우리의 결혼생활


사춘기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완성되는 긴 여정이다. 10살부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12세, 14세, 16세를 거치며 역동적으로 진화한다. 내가 키운 세 딸은 모두 다른 사춘기를 경험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 맛의 사춘기를 지나지만,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시기와 때는 다를지언정 그 아이 인생의 그래프에는 반드시 빨간 불이 켜지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모두가 겪어온 사춘기가 왜 요즘 들어 ‘금쪽이’, ‘중2병’, 학교폭력과 관찰보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위기 청소년을 양산하게 되었을까?


이전 세대의 사춘기와 지금 아이들이 경험하는 사춘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의 사춘기는 대부분 자신을 찾아가는 과도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자신을 알기도 전에 세상의 물질적 세계관을 먼저 접한다. 소셜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세상을 향한 눈을 뜨는 반면, 자신을 향한 눈은 서서히 감아진다.


생활 격차가 증가할수록 아이들은 교육격차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릴스와 숏츠 같은 짧은 매체의 대중화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자극적인 영상을 볼수록 뇌의 도파민은 과잉 노출되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큰 도파민을 찾는 중독 증세와 금단현상이 핸드폰 중독으로 이어진다.


우리 집 아이들은 닌텐도 게임을 원 없이 했다. 보드게임도 실컷 했으며, 레고와 블록, 비즈공예, 베이킹 수업을 비롯해 피아노, 바이올린, 인라인스케이트, 테니스 등 다양한 예체능 수업에 집중하면서 여러 방법의 게임을 몸소 익혔다.


최대한 핸드폰 게임은 줄이고, 외부와 소통하면서 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게임을 장려했다. 숲으로 가서 자전거 타기를 즐겼고, 학교 도서관을 최고의 놀이터로 삼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아이들의 사춘기 반항은 오히려 요즘 평범한 아이들의 세계관과 부딪쳤다.


딸들은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아이를 불편해했고, 숙제와 시험에 부정적인 아이들의 생각을 공감하기 어려워했다. 특히 부모와의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친구들과는 교집합이 없어, 애써 이해하려 하다가도 결국 엄마에게 푸념하듯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열두 살에는 친구들의 거친 장난이 놀리고 잡으려는 순수성에 기반한다. 중학생이 되면 조금 더 지능적인 방법으로 소외시키거나 장난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며 매우 어중간한 방법으로 심리전을 펼친다. 특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그렇다.


고등학생이 되면 학급 안에서도 경쟁과 치열한 학업 스트레스로 우정과 경쟁 구도 사이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표출된다.


사춘기의 느낌은 전혀 다르지만, 결국은 자신의 중심을 잡는 시간이다.


제대로 관문을 통과해야 다음 스텝을 지나갈 자격이 주어진다. 답을 보려고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잘 다져서 올라가야 답을 제대로 얻고 지나갈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관문 중 가장 큰 첫 번째 관문인 사춘기를 아이들이 정성스러운 코스로 지나가게 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


단순히 반항기가 아니다. 아이들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잡아줄 절호의 타이밍이다.


서로를 존중하되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우고, 단단하게 밟아서 무거운 벽돌로 차근차근 쌓아가는 기초공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사춘기는 흔들림이 아니라, 견고함을 세우는 시간이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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