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넘어져 본 사람일수록 쉽게 일어난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법만 배우면, 정작 일어서는 방법은 모르게 된다.”
일본 정신과 의사 사이토 시게타의 인터뷰를 본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 어딘가 속이 시원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온 것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작은 확신이 찾아왔다.
나는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다쳤을 때 호들갑을 떠는 엄마가 아니었다. 심하게 다친 상황이 아니라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최소한의 넘어짐이나 찰과상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아이 스스로 약을 바르게 했다. 후시딘과 대일밴드로 가볍게 처치하면서, 상처 부위를 어떻게 씻고 소독하는지, 2차 감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급상자가 어디 있는지부터 치료법까지 상세히 설명했다.
왜 넘어졌는지는 아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처리법을 알려주는 것, 그래서 아이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눈물을 닦고, 씩씩하게 일어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물었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처럼 품 안에 넣고 다닐 만큼 애지중지하지 않아? 엄마는 내가 다쳐서 속상하지도 않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놀랐고 속상하지. 그래도 앞으로는 이렇게 내리막길에서 뛰지 않을 거라는 경험을 했잖아. 또 살다 보면 다시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그때 너무 놀라지 않고 다시 처리할 용기가 생길 거야. 엄마는 그게 좋은 배움이 되었다고 생각해.”
그러면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대일밴드 중 가장 큰 것을 골라 붙였다.
코가 아프면 코에도 대일밴드, 혀를 씹어도 대일밴드를 찾았던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제 사춘기가 되어, 마음의 단련도 이렇게 단단해졌다. 이제 아이들에게 종종 어려움과 실패를 응원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배우기 때문이다.
인생이 쉽고 편리하고 안전하기만 하다면, 작은 바람에도 앞을 보지 못한다. 거친 풍랑을 마주해도 견디고 지나가는 법을 아는 사람, 산전수전을 겪어본 사람의 강인함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공부도, 직업도, 삶 자체도 쉽지 않다. 빨간불과 파란불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사소한 실패의 경험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어떤 방법으로 회복하여 발전했고, 성공의 궤도에 올랐는가. 이것이 바로 진짜 영재성이다.
꾸준함과 집요함은 실패를 지나, 경험을 발판삼이 딛고 도약해 본 사람에게서 나온다. 영재성을 갖춘 사람이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학창 시절 교우관계에서, 진로와 학업 역량에서, 인성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법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들이 언젠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넘어졌을 때, 혼자서도 상처를 씻고 소독하고, 가장 큰 대일밴드를 스스로 붙일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