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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신부

#명절의 맛

by 우리의 결혼생활

어린 신부에게 명절은 일 년에 두 번 있다. 그리고 봄과 가을에 맞이하는 대 명절 설과 추석은 어린 신부에게 연말연시의 단맛과 쓴맛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은 오래전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안부를 물을 수 있다. 평상시 인사하기 어려운 관계이거나 마음을 표현하기 어색할 때 명절은 좋은 명분이 된다. 가족 간의 인사뿐 만 아니라 존경하는 스승님과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에게 인사드리는 날이 된 지 오래다. 명절에는 먼 일가친척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여기서 음식은 누군가 준비를 하기 마련인데 긴장감은 여기서 시작된다. 어린 신부의 각종 기념일은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나있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을 비롯한 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 연중행사는 챙기다 보면 끝도 없이 늘어나기 때문에 어린 신부에게는 약간의 지혜가 필요하다. 새롭게 가족이 된 사이에서는 소소한 선물이 마음을 나누기 좋은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첫 명절에는 사위, 며느리로서 약간의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 또 요리솜씨를 마음껏 발휘할 좋은 기회가 된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전을 부치거나 설거지를 거들고 둘러앉아 이야기에 맞장구치며 어울려가는 사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잘 먹고 웃으며 좋은 이야기만 하면 좋겠지만 명절에는 꼭 분위기 좋게만 지나가지 않은 경우도 있다. 때문에 결혼 전 앉아서 엄마가 해놓은 맛난 음식만 배불리 던 때는 잊어야 한다. 어린 신부는 마음 단단히 먹고 이제 한국식 명절을 제대로 맛볼 시간이다.


집집마다 다른 모양이 있겠지만 어린 신부에게는 첫 명절은 5성급 호텔에서 호화스럽게 시작했다. 시댁가족과 함께 전날부터 숙박하고 이튿날 명절당일 조식을 먹었다. 호텔에서 1박은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지만 그 뒤에 집에 가지 않고 명절기간 차로 이동하며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임산부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것을 이때는 미처 몰랐다. 뱃속 아기의 태동과 함께 등까지 조여 오는 배뭉침을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라 모든 게 서툴고 어려운 어린 신부는 적당한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섞어보는 경험을 했다.


집집마다 전수받아야 하는 특별한 음식이 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그 맛을 알기 위한 특별 레시피수업이 있었다. 노트에 적기도 하고 영상으로 찍어도 보면서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특별한 육전과 찌개, 김치 등을 전수받았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할머니의 맛은 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전수되었다. 계량도 저울도 불필요한 할머니 방식 손대중으로 하는데 언제나 정확한 그 맛을 찾아가지 너무나 신기할 정도였다. 어린 신부에게 요리는 인터넷 레시피나 요리책을 찾아가며 배우는 초보였지만 명절을 여러 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어느 정도 원하는 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손맛은 바로 내가 어린 시절 엄마가 내 입에 맛보게 해 주신 그 맛의 기억이 어린 신부의 손맛이 되고 결혼 후에 익힌 그 맛이 내 아이들이 맛볼 손맛이 된다.


명절에 친지 분들과 함께 식사자리는 더욱 조심스러운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보이려 급히 먹거나 과식은 금물이다. 더욱이 어려운 자리인 만큼 소화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어린 신부가 되려면 어느 정도 비책이 필요하다. 어린 신부는 서투른 탓에 너무 조금만 먹어서 늦은 저녁을 또다시 먹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책이랄 것도 없다. 그저 적당히 먹을 것 하지만 평상시보다 약간만 적게 먹을 것 정도다.


행동이나 생각은 결국 온전한 말에서 시작된다. 때에 알맞고 차분한 어조는 긴장한 마음을 녹이고 상대를 칭찬하는 말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한다. 겸손한 마음이 중요하고 남편의 가족이 아니라 점점 한 가족이 되어야 화합될 수 있다. 양가 평등한 관계와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감정의 줄다리기는 불 필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어린 신부에게는 생각의 유연함이 부족했었다. 유머로 흘러가는 말에도 종종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어디서나 중요하지만 가부장적인 가정에서는 여전히 남존여비가 존재한다. 교육은 그렇지 않다고 배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가정 문화는 앞 세대의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여전히 상차림에는 여자가 전담하고 설거지와 뒷정리하는 일종의 명절문화는 뿌리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늘 이상과 현실은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단번에 바꿔질 수 없다. 가족 간에도 명절 즈음에 일정이나 내용을 상의하거나 말을 하다 보면 별 뜻 없는 말로 서로 오해를 쌓기도 한다. 명절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가족은 어느 정당으로 이분하여 정치하듯이 세력이나 권력관계의 잣대로 보면 안 된다. 이제는 잘 알고 있듯이 지배하려고 할수록 우리는 군림의 굴레를 벗어나려 하기 때문에 화목한 가정이 되려면 서로 존중하는 말과 그동안 각각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생각의 가치를 서로 높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서로가 서서히 하나로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린 신부는 화목한 가정을 꿈꿨고 그것을 위해서 내 힘에 넘치도록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사랑은 모든 역경을 이기는 법이다. 어린 신부는 명절컬렉션처럼 모두 맛보았다. 어린 신부에게는 생활의 지혜가 부족해서 이런저런 실수를 남발하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고민에 빠졌지만 하지만 오답정리를 잘해온 시간 덕분에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쓴맛이 빠지고 나면 단맛이 더 고맙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린 신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하거나 자책하기보다는 지금의 모든 것이 경험이고 추억으로 배움으로 만들려는 노력하는 것에 집중할 것 같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삐그덕거리는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려움과 실수에 맞서는 것이 조금 두려울 수 있지만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존경받는 어린 신부가 되어가고 있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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