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청춘을 위하여
우리 사회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경험 부족을 지적하면서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아이들의 삶에 투영하여 도전이나 경험에 앞서 큰 문을 세게 닫아두곤 한다. 경쟁과 견제 사이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은 경험을 하되 실패는 부정되는 세계에서 꿈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성인들은 한 번의 실패로 회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경험을 통해 고립된 은둔자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목숨과 부인 그리고 어린 자녀들의 숨을 송두리째 삼켜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극단적 현실은 우리 사회가 실패에 대해 얼마나 관용적이지 못한 지를 보여준다.
인생의 삶 속에서 자연히 체득되어야 할 굳은살은커녕, 무릎에 피나기도 전에 습윤밴드를 착용시키는 것과 같이 아이들의 성공의 발판을 빼앗아 버린다. 이는 과보호가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입시생들의 내신경쟁 그리고 수행지옥, 이 모든 것이 부모님의 뒷배 없이 불가능하다면 제대로 된 교육일 리 없다. 어쩌면 부모님의 사랑이 이율배반적으로 시험지도둑 또는 아빠찬스 식이 되는 방식들은 경험을 이력을 돈 주고 사라는 식이 된다.
성공이 무엇인가? 자기 효능감이나 자기 존중감은 무엇이며, 아이들의 삶의 주체성은 누구에게 소유된 삶인가? 의문이 든다. 아이들에게 간접경험의 독서는 매우 중요하고 지금도 내게 가장 큰 관심 분야이기도 하다. 분별력과 비판적 사고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간접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깨지고 부서지면 깨질 것을 두려워하기 전에 붙여본 경험치가, 또는 제대로 된 회복능력이 자기를 되살려낸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치 않고 스스로 자가치유가 가능하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되거나 무료해지지 않는다.
잘된 인맥이나 사회서비스를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도전하고 경험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킬 것인가?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싸워볼 의지를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가 대신 살아줄 삶은 십 대일뿐이다. 청년의 때, 매우 짧고 강력한 이 시기에 대신 갚아주는 채무처럼 손 하나 대지 않고 털어버리는 가냘픈 능력치로는 자기 삶 하나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안정망이 보장된 선진국가로 출산율이 상승하려면 먼저 경제능력을 갖추도록 학습하는 어린아이들에게 경험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점이다. 대신 무엇을 얻어줄지가 아니라 양질의 자업자득의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고 넘어진 자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은둔하는 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회가 아름답다. 무한 경쟁으로 배우지 못한 경험의 소중함은 빼앗기게 해선 안 된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면서 스스로 질문하는 아이, 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