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돌멩이에 뒤통수가 얼얼하다.
이번 주에 학교 교내 대회의 실시간 점수판 서버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틀 밤을 새어 서버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하지만, 대회 당일 테스트가 부족했던 점수판 서버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고, 나는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순간 떠오르는 글이 몇 개 있어 소개해본다.
작년 브런치를 시작했을 즈음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내가 수강하고 있던 대형 프로그래밍 과목의 자동 채점기가 부실하게 코딩되어서 RCE(원격으로 시스템 명령어를 실행하는 악성 행위)를 전혀 막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일 관련 권한제어가 되어 있지 않아서 다른 학생들의 코드를 볼 수 있었다. 당시 교수님은 악성 행위를 하지 못하게 프로그래밍 하는 '안전 코딩'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게 가르치셨는데, 정작 채점 프로그램이 안전 코딩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나서 적은 글이다.
자신의 글은 다시 읽으면 항상 부끄럽다고는 하지만 저 글은 유난히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의 좁은 식견을 너무나 잘 드러내주는 글이기 때문이다. 자동 채점기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왜 조용히 조교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굳이 이렇게 글을 써서 학교 친구들, 선배들에게 알리고 그들을 부끄럽게 해야 했을까. 페이스북 글의 날 선 어투가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아프게 돌아오는데, 당시의 조교님에게는 얼마나 아프게 받아들여졌겠는가.
저 글을 쓸 당시에 나는 학교를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고, 나름 같이 입학한 신입생들보다 먼저 컴퓨터 관련 공부를 접한지라, 선배들이든 동기든 내가 이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양 떠들고 다녔다. 그렇게 떠들고 다닌 기억조차 부끄러운데 하물며 저 글은 어떻겠는가.
이 글은 위의 글을 쓰기 몇 달 전에 쓴 글이다. 이 글에서 두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래, 결국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부분인 것이다. 식견이 좁고, 진정하게 잘하는 이들이 보지 못하니 마냥 내가 뛰어난 줄 알고 막말을 해 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말들이 여럿에게 주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네가 돌을 던지면 결국 그 돌은 지구 한바퀴 돌아서 너의 뒤통수를 때릴 것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럴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해준 말이다. 저 말이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나의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여러 사람이 불편을 격은 지금 더더욱 나의 글이 부끄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