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비평 :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나 혼자 아쉬운 당연한 도시의 변화

by 붕어맛싸만코

* 글을 쓰기에 앞서, 며칠 전 있었던 중앙역 자살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아무래도 본 글의 주제가 지하철과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민감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글에서도 언급하지만, 실제로 죽는 것과 죽음에 마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지하철 안전을 위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는 것이 옳다. 다시 한번 지하철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전한다.



두 달 전 즈음이었나, 기말고사가 다가올 때 부근이었다. 같이 교육봉사를 하는 친구가 과제로 도시를 비평하는 글을 써야한다고 이야기를 꺼내왔다. 마침 교육 기획 회의도 소강 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기에, 기분전환 삼아서 같이 글감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교수님께서 주신 예시가 '바람길을 막는 고층 건물'임을 보아, 교수님께서는 상당히 도시의 근본적인 부분을 비평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이힐에 담긴 미에 대한 욕망이라느니, 백화점에 구조에 담긴 자본주의적인 가치니 하는 시덥잖은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에 나는 문득, 예전에 했던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지상철이 많은 4호선은 스크린도어가 없는 곳이 꽤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호선들에 비해서 자살이나 사고 등의 인명피해가 자주 발생하고는 했다. 학교에 갓 입학했을 당시에, 유난히 그런 사건이 많이 일어났었는데, 전철이 사고로 사당까지만 운행한다고 하면 '아, 오늘도 사람이 하나 죽었구나'하고 생각하는 정도로 꽤 잦은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하철 플랫폼 앞에 서면, 죽음에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나의 의지이든, 사고에 의해서이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사고가 워낙 많이 나서 그런지, 최근에 학교 앞 전철역에도 스크린도어 설치를 위한 기초 설지 작업에 들어갔다. 더욱 안전해 지면 좋은 것일 텐데. 더 이상 발이 저릿거리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면 좋은 것일 텐데, 나는 어째서인지 아쉬움을 느낀다.




도시는 삶의 공간이다. 죽음이란 삶의 일부이고, 떨어질 수 없는 개념이다. 도시는 이 사실을 자꾸 잊게 만든다.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유리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사고로 죽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장소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죽음과 어느 정도로는 맞닿아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물 옥상에서, 지하철 플랫폼에서, 현수교 갓길에서. 내가 죽을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사람은 죽음에 마주하는 것 만으로 주변의 잡생각을 꽤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겨있는 옥상 문과, 스크린도어 설치 공사가 한창인 전철역을 보면서 원래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장소들을 잃는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게 된다.


이 이야기를 교육이 끝난 뒤 친구와 이야기를 했었다. 그들은 나의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 하지만 터부에 다가가는 묘한 쾌감과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듯한 이 기분을 놓치기는 힘들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지어져가는 스크린도어를 보며 못내 아쉬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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