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장짜리 여유

선유도 공원 근처에서 찍은 사진으로 주저리주저리

by 붕어맛싸만코

말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인생에 대해 말할 기회가 종종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 삶은 마치 '서울시 공공자전거로 관악산을 오르는 것' 같다라고 자주 이야기하고는 한다. 남들에 비해 더 빨리, 더 높이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니 굳이 남부순환로를 따라 천천히 위로, 뚜벅이에서 자전거로, 자전거에서 경차로 순차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타고 있는 삐걱대는 공공자전거로 바로 산을 오르려고 하는 것이다. 굉장히 버겁고 힘들지만, 이미 산에 올라버린 것을 어쩌겠나.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계속 페달을 밟는 수 밖에.


이런 조급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다보니, 여유를 가지고 어딘가를 돌아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바빠져서, 여유는 커녕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을 지나오고 나서, 내가 따로 시간을 내서 쉬거나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휴일이 되어 여러가지 쉬는 방법을 고민하였으나, 그냥 방에서 혼자 쉬는 것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 것 같다는 이유로, 운동을 나가는 것은 월요일에 나를 매우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각하하였고, 월요일에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으며,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취미인 사진 찍기를 택하였다.


당산역에서 본 국회의사당. 후처리를 해서 선명해 보인다.

그 전날 늦게 잔 탓에 오후 느즈막이 당산역으로 향했다. 날씨가 그리 좋은 날은 아니어서, 사진이 그렇게 예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무렴 어떠랴.

당산역을 나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국회의사당이었다. 사진에는 어느 정도 후처리를 해서 선명하고 예쁘게 나왔지만, 실제로 볼 때는 뒤의 높은 건물들과 함께 안개같은 것에 둘러쌓여 있어서 현대판 마왕성이 있다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했다.

당산역 비둘기. 내가 다가가도 날아가거나 하지 않는다.

당산역에서 내려가는 계단에는 비둘기들이 잔뜩 있었다. 비둘기들은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가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까치나 까마귀 참새와 같은 흔한 새들은 대부분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그림에 나오고 하는데, 어째서 비둘기는 옛날 그림에 전혀 나오지 않을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나의 가설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비둘기를 들여온 것이고 비둘기는 원래 외래종이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근거는 전혀 없다.

당산역 계단. 이 사진이 나는 계속 마음에 걸린다.

비둘기를 뒤로하고 마주한 계단은 나를 뭔가 계속 불편하게 만들었다. 입시 미술을 하는 중학생이 잘못그린 풍경화마냥, 뭔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들었던 사진이다.

철교에 달린 무언가. 새 같아서 찍었다.

내려와서는 한강 둔치를 걸어다니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모든 사진에 글을 한 타래씩 달아가며 모든 사진을 설명해 가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한강 둔치에서 찍은 한강 사진은 생략하기로 했다. 한강은, 아니 한강 뿐만 아니라 넓은 물은 몇 시간을 지켜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강바람을 쐬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힘을 얻는 것 같다. 한강에서 벗어나서, 선유도로 가기 위해서 양화대교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무언가 용도를 알 수 없는 오브제가 다리에 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근처의 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원앙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카메라에 답았다. 이 사진은 후처리를 하지 않은 사진인데, 앞의 국회의사당 사진과 비교해 보면 후보정 전과 후의 색감차이가 확연히 보인다.

카페 아리따움. 양화대교 중간에 있다.

연비가 영 좋지 못한 친구가 슬슬 배고파하기 시작할 때 즈음, 양화대교 한 중간에서 카페를 만났다. 카페 아리따움. 백열등으로 조명을 하고 여러 음료를 진열해둔 장이 있는 덕택에 사진 찍을거리가 늘어 즐거웠다. 카페에서 가볍게 샌드위치와 핫도그를 먹으며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작 오늘의 목적지였던 선유도 공원을 도착하기도 전에 날이 어두워져 버렸다. 사진을 찍기에는 글렀으나 그래도 온 김에 선유도 공원을 한번 둘러보기로 결론을 내리고 카페를 뒤로 하였다.

DSC01519.JPG 선유도 공원의 길. 이름이 무려 '편안한 길'이다.

밤의 선유도 공원은 벌레와 커플의 천국이었다. 커플이라도 완전히 정식으로 애인관계가 된 커플은 아닌 것 같고 많이 친해져서 적당히 분위기를 잡아볼 타이밍을 보고 있는 그런 커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선유도 공원은 옛 정수장을 그대로 공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스산한 느낌이 나긴 했지만, 조명의 배치를 잘 해서 신비롭고 예쁜 느낌도 부분 부분 내고 있었다. 이름이 무려 '편안한 길'인 사진 속의 길을 걷는 코스가 다른 코스에 비해서 가장 편안했다. 정말 이름값하는 길인 것 같다.

선유도 공원의 나무. LED가 나무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간혹 계단이나 다리가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배치된 정자나 적절한 위치에 배치된 편의점도 그렇고 아침이나 점심에 돌아다니기보다는 선선한 저녁바람 쐬면서 돌아다니기에는 적한한 것 같았다. 느즈막이 나온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여기 저기 둘러보았다. 주로 식물들에 LED를 쏘아 만든 장식물이 많았는데, 나무의 생장에 LED가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DSC01587.JPG 선유도공원을 빠져나오는 다리. 사진 잘 찍혔는데 추락주의 표지가 옥의 티이다.

근 3시간을 쉬지않고 걸으면서 당산역에서 영등포생태공원, 양화대교를 거쳐 선유도공원에 이르는 사진 촬영을 마쳤다. 250장 가량을 촬영했는데, 그 중에 파일로 저장하고 있을 사진은 20장도 채 되지 않는다. 어쩌면 사진이 사람을 여유롭게 하는 것은 거기서 오는 것 같다. 100장의 사진 중 20장이라도 건진다면 그것으로 족할 줄 알고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를 여유로운 상황에서 쫒아낼 휴대전화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으러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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