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신념이 없으면 남의 신념대로 살게 된다.
철학은 정답이 없다.
수능 언어영역에는 정답이 존재하지만, 문학과 철학에는 정답이 없다. 수능에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문학과 철학은 글쓴이의 의도보다는 내가 느낀 감정과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
철학을 지식으로 접근하면 그 철학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삶의 지혜로 접근하면 내가 느낀 감정과 깨달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글쓴이의 의도는 글쓴이 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적 지식의 대부분은 찰학자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철학 전문가의 의견일 기능성이 높다.
내가 데카르트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이 소멸되어도 의식이 남아 있으면 내가 존재하는 것이고, 모든 것이 존재해도 내 의식이 소멸되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는 것이다. 내가 칸트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지성과 감성은 절대 경험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고, 순수 이성은 절대 경험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신, 도, 참 자아와 같은 순수 이성은 지성으로 증명이 불가능하고, 감성으로 경험할 수 없으니 증명하려고 노력해 봐야 불필요한 합리화만 늘어날 뿐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증명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데카르트 전문가와 칸트 전문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지금의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
지금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내 생각뿐이다.
자신의 신념이 철학이 된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데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혈안이 돼서 보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자신의 감정이나 해석에 맡기는 것이 맞을까?
영화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의 의도나 영화 평론가의 의견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평론가의 의견을 찾아볼 수 있지만 영화를 볼 때 자신이 느낀 그 감정이 꼭 평론가의 의견과 일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평론가의 의견 또한 감독의 의도는 아니다.
칸트의 생각은 칸트 철학 전문가의 의견이 아니다. 칸트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칸트 본인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자신만의 철학이다.
우리는 초중고와 수능을 거치다 보니 문학을 보더라도 보편타당한 의미를 계속 찾는다. 자신의 의견이 보편적이지 않으면 틀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철학책에는 생각이 있고,
철학 해설집에는 인용이 있을 뿐이다.
“칸트의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된다.”라는 해설은 결론적으로 지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지식으로 문학, 철학, 종교를 접근하면 보편타당한 무언가를 찾게 되고 자신의 생각이 보편타당하지 않을 경우 비난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우리는 철학 전문가가 아니라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라는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생각을 남들에게 알리거나 설득하고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이론들을 나열할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내 생각을 말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사회 통념은 내 신념이 아니다.
권위에 의존하고자 하면 지식을 계속 파게 되고, 내 해석이 그 권위자와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증명된 사실만을 알리고자 한다면 철학과 종교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신념은 철학이지 사회 통념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이 맞든, 틀리든, 사회 통념에 적합하든, 적합하지 않든 상관없다.
자신의 신념이 곧 자신의 철학이 되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모든 사람은 다 철학자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모두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Youtube 더마프 The Magnetic Life
더 자석 같은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