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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남자 Feb 20. 2021

충격적인 아내의 욕(慾)

이해하기 힘든 배우자의 성향 : 남편의 이야기

나이가 들수록 옛말에 틀린 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유유상종'은 자다가도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맞는 말인 것 같다. 심리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다 뜯어봐도 사람들은 유사한 환경의,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많이 어울린다. 특히 거주지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출신 학교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괜히 학연, 지연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부부동반 모임을 하면서 정말 유사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구나 하고 느꼈었는데, 5쌍의 부부 중 3쌍이 신혼여행에서 아내가 운전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운전을 먼저 배우고 더 능숙한 경우가 많지만, 나와 나의 친구들은 그러지 못했고 그날 아내들은 그동안 쌓였던 같은 색의 불만을 하나로 모아서 터뜨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과 살아가지만 부부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여 더 우수한 종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유전학적 인간의 본능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부부들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차집합을 갖고 있다.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아내의 성향은 다름 아닌 승부''인데 아내의 승부욕은 만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부부들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차집합을 갖고 있다."




아내는 승부욕이 강해서 어릴 적 가족들과 게임을 하다가 지면 울고 이길 때까지 계속했다는 이야기를 결혼 전에 분명히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 이야기를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아내의 승부욕은 유명한 스포츠 스타의 승부 근성 그 이상이다. 아내는 사소한 게임이라도 지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고스톱을 치며 아내의 숨겨진 승부욕을 제대로 느꼈는데 아내의 고스톱 사건은 시간적 흐름에 따라 1~3단계로 진행되었다.


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면서 세 커플이 모였고 고스톱을 치게 되었다. 커플끼리 한 팀이 되는 것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랜덤으로 팀을 정했고 아내와 나는 다른 팀이 되었다. 나는 넷마블 고스톱 경력 20년으로 점수 계산은 잘 못하지만 게임에서 질 자신은 없었다. 운이 따랐나? 족족 쪽과 따닥, 폭탄으로 화려하게 이겨가던 와중 운이 없었나? 하필 아내 다음이 내 차례였고 그림 맞추기 정도의 룰만 알고 있던 아내는 국화 열끗을 버렸다. 나는 "이런 건 버리면 안 되지. 이건 쌍피라고." 말하며 아내가 버린 국화를 내가 가져가자 아내는 갑자기 울어버렸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느 정도 승부욕은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러는 건 또 처음이라 매우 황당+당황했다.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아내를 데리러 갔으나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복싱 선수처럼 내 가슴을 강타했고 자신도 너무 세게 때려 놀란 듯한 눈치였으나 게임에서 진 억울함이 더 컸는지 복도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첫 번째 패에 목숨 수(壽)가 술잔에 새겨져 있는데 과거 술에 국화꽃을 넣어 마시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열끗 또는 쌍피로 활용할 수 있다.


② 과연 고스톱에서 진 게 그렇게 억울한 일인가? 더군다나 나는 경력이 20년이고 아내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는데 내가 이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이런 거라도 이겨야지 사실 어디서 이겨 먹겠는가. 그 날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갔고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길래 뭐하나 봤더니 책상 위에 화투를 펼쳐놓고 유튜브로 고스톱 공부를 하고 있었다. 2시간을 그렇게 영상을 보더니 장판을 깔고 고스톱 다시 한 판 붙자고 했다. 당연히 2시간으로 20년의 경력을 단숨에 따라잡기는 힘들었고 몇 판을 계속 진 아내는 눈물을 흘려가며 이길 때까지 한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마지막 게임을 고도리로 이겼고 그렇게 밝게 웃는 아내는 또 처음 보았다.  

고스톱 공부하는 아내


③ 그 뒤로 아내에게 모바일 고스톱 게임을 알려줬더니 그 날부터 무섭게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게임 삼매경이었고 한동안은 거기에 빠져서 살았다. 문제는 한 게임 한 게임 다 이겨야 한다는 아내의 승부욕이었다. 상대가 돈을 따고 나가버리면 엄청 억울해하고, 패가 계속 좋지 않으면 게임사에서 결제를 유도하는 수작이라면서 흥분하며 날뛰었다. 또 한 번은 게임에서 지고 나서 질질 짜는 것도 보고 게임머니 100만 원이 5억을 갔다가 오링 나면서 천당과 지옥을 드나드는 모습도 보았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공부를 해가며 실력을 늘렸고 단 1년 만에 20년 경력을 따라잡는 수준이 되었다.




지금 아내는 정말 스트레스 받을 때만 나에게 허락을 받고 게임을 받아 1시간쯤 하고 다시 지워 버린다. 과거에 테트리스에 빠져 1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테트리스를 했다고 하는데 그때 모습이 상상이 된다. 최근에는 화투로 게임을 새로 만들었는데 패의 위치를 외우고 2장씩 뒤집어 점수를 내는 방식으로 간간히 재미 삼아하고 있다. 내가 3:1로 이긴 날 아내는 화투패를 엎어버리고 방에 들어갔고, 아내의 성향을 알고 있는 나는 잘 다독여서 기분을 풀어주었다.


"여보, 뭐든 여보가 항상 이길 수 있는 거는 아니야.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어. 그런데 네가 질 때 감정 컨트롤을 하지 못하고 표출해버리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도 있고 너 자신도 피해를 입어. 그러니 항상 그런 부분은 조심해서 행동해야 해. 하지만 나는 너의 승부욕을 정말 높게 산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너도 너 스스로 너무 강한 승부욕으로 마음이 힘들겠지만 그런 자기 자신을 이해해주고 네가 정말 특별한 사람인 걸 알았으면 해.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이거든."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단연 고도리이다. 고도리는 5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충격적인 아내의 #승부욕은 내가 아내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나는 내가 승부욕이 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면 뭐 어때 하고 넘겨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씩 아내의 승부욕은 부럽기도 하다. 아내는 뭔가 이기기 쉬운 마음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못하는 게 거의 없다.

승부욕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다. 나도 이런 아내를 본받아서 대학생처럼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고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많이 다르지만 서로 닮아가며 오늘 하루도 잘 보낸다.




안녕하세요. 부부생활에 대한 생각을 쓰고 있는 '그남자'입니다. '그여자'로 활동하는 아내와 같은 주제로 1주일에 하나씩 각자의 생각을 펜으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남녀의 다른 생각을 비교해 읽으시면서 남편과 아내분들께 공감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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