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날 이후, 나는 멈췄다

그놈은 사라졌지만 나는 계속 무너졌다.

by 마로

슬프면 울고

지치면 멈추고

힘들면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 마음이 이토록 간절해질 줄은 몰랐다.


예전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다.


슬픔은 사치였고

지치는 건 게으름 같았고

힘들다고 말하는 건 민폐 같았다.


그래서 참았다.

감정도 고통도 말도.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놈이 내 삶을 망가뜨린 뒤부터는 더 그랬다.


그놈은 나를 해쳤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갔다.


그 후 나는 무너진 채 입을 닫았다.

조용히 하면 없던 일이 될 줄 알았다.


말하지 못한 고통은

내 안에서 커졌고

결국 감정을 삼키고 삼켜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웃었다.

하지만 웃음 뒤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밥도 먹고 일도 하고 대화도 했지만

그 모든 일에 나는 없었다.


감정은 기능이 되었고

몸은 껍데기처럼 움직였다.

2016년, 그날 이후 나는 멈춰 있었다.

정말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한 밤이 있었다.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면

누구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

사라진다는 건 죽음보다 덜 무서운 말이었다.

그만큼 고통도 감정도 무뎌져 있었다.


그때부터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아프고

밤이면 자꾸만 깨고

눈물이 이유 없이 고였다.


감정은 죽은 줄 알았는데

몸이 계속 울고 있었다.


내가 모른 척한 동안

내 안의 고통은

몸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던 거다.


나는 끝내

그놈의 이름을 꺼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서웠고 부끄러웠고

그 사람이 아닌 내가 더 잘못한 것 같다는 착각이

나를 수없이 막아섰다.


하지만 결국

공권력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안다.

멈춰야 했던 건 내가 아니라, 그놈이었다.


난 피해자고 넌 가해자다.

그건

내가 나에게 해준

첫 번째 보호였다.


그렇게 입을 열었는데도

상처는 끝나지 않았다.


그놈은 사라졌지만

그놈이 만든 공포는

내 안에서 계속 살아 있었다.


남자들이 다가오기만 해도

몸이 먼저 굳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소스라치듯 도망갔다.


그 누구도 나를 때리지 않았지만

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았지만

늘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몸은 매일 ‘지금도 위험하다’고

비명을 질렀다.

결국 몸이 먼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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