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재판은 끝났지만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말해봤다

by 마로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판단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과거의 한 시기를 통과하며 내 안에 남겨진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실화 기반의 에세이입니다.


“이제 끝났네.”

재판 결과가 나오던 날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이제 다 잊고 살아. 잘 이겨냈잖아.”

축하하듯 위로하듯 건넨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은 점점 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야 한다는 말이 나를 더 조용히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그땐 아무도 몰랐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다.

괜찮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시절 나는

감정이 사라진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밥을 먹고 일하고 가끔은 웃기도 했지만

마음은 늘 다른 데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을 볼 때마다

“이제 끝났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제서야

끝났다고 말해도 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감정은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런 밤들 속에서

화장실 형광등도 켜지 못한 채로 살아갔다.

그 빛이 너무 밝으면

속이 울렁이고 숨이 막혔다.

그래서 늘 간접 조명 하나만 켜고

화장실을 썼다.

물론 지금도.

어둠이 더 편하다.

빛이 너무 밝으면 마음 깊은 곳까지 드러나버릴 것 같았으니까.

불안은 점점 더 커졌다.


어느 날부터 하루에 정신과 약을 14알씩 먹었고,

링거를 맞으며 하루를 버티는 날도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구속되기 전 내게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진심이든 협박이든 상관없었다.

그 말 하나가 내 삶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잠들지 못하고

문이 울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엘리베이터가 무너질 것 같고

길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이 석방되면 어떡하지…’

‘이사한 내 집을 알면 어떡하지…’


그건 그냥 공포가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음마저 흔들리는 절망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 정말 나를 잃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입원해 약을 끊기 시작했다.

약을 끊는 일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부작용으로 몸은 붓고

살이 급격히 쪘고

그 변화는 다시 나를 우울 속에 빠뜨렸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살아야 했다.

외면보다 내면이 먼저 숨을 쉬어야 한다고.


그렇게

심리 상담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상담실에 들어섰을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편했다.


선생님은 기다려주셨다.

준비될 때까지

내 감정이 말이 되도록

충분히 기다려주셨다.


그 공간은 처음으로

내 고통의 순서를 재촉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회복하는 사람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재판은 끝났지만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말은 고통의 연장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도 회복 중이다.

천천히

어두운 조명 아래서부터.

그 조용한 곳에서

다시 감정을 느껴보고 있다.


살고 싶지 않았던 그 시간들을 지나
다시 살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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