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말해봤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판단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과거의 한 시기를 통과하며 내 안에 남겨진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실화 기반의 에세이입니다.
“이제 끝났네.”
재판 결과가 나오던 날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이제 다 잊고 살아. 잘 이겨냈잖아.”
축하하듯 위로하듯 건넨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은 점점 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야 한다는 말이 나를 더 조용히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그땐 아무도 몰랐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다.
괜찮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시절 나는
감정이 사라진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밥을 먹고 일하고 가끔은 웃기도 했지만
마음은 늘 다른 데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을 볼 때마다
“이제 끝났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제서야
끝났다고 말해도 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감정은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런 밤들 속에서
화장실 형광등도 켜지 못한 채로 살아갔다.
그 빛이 너무 밝으면
속이 울렁이고 숨이 막혔다.
그래서 늘 간접 조명 하나만 켜고
화장실을 썼다.
물론 지금도.
어둠이 더 편하다.
빛이 너무 밝으면 마음 깊은 곳까지 드러나버릴 것 같았으니까.
불안은 점점 더 커졌다.
어느 날부터 하루에 정신과 약을 14알씩 먹었고,
링거를 맞으며 하루를 버티는 날도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구속되기 전 내게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진심이든 협박이든 상관없었다.
그 말 하나가 내 삶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잠들지 못하고
문이 울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엘리베이터가 무너질 것 같고
길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이 석방되면 어떡하지…’
‘이사한 내 집을 알면 어떡하지…’
그건 그냥 공포가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음마저 흔들리는 절망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 정말 나를 잃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입원해 약을 끊기 시작했다.
약을 끊는 일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부작용으로 몸은 붓고
살이 급격히 쪘고
그 변화는 다시 나를 우울 속에 빠뜨렸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살아야 했다.
외면보다 내면이 먼저 숨을 쉬어야 한다고.
그렇게
심리 상담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상담실에 들어섰을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편했다.
선생님은 기다려주셨다.
준비될 때까지
내 감정이 말이 되도록
충분히 기다려주셨다.
그 공간은 처음으로
내 고통의 순서를 재촉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회복하는 사람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재판은 끝났지만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말은 고통의 연장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도 회복 중이다.
천천히
어두운 조명 아래서부터.
그 조용한 곳에서
다시 감정을 느껴보고 있다.
살고 싶지 않았던 그 시간들을 지나
다시 살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