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다시 연결되는 길
“왜 울어?”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건 궁금함이 아니라 울면 안 된다는 꾸짖음이었다.
나는 울음을 삼켰고 감정도 같이 삼켰다.
그건 습관이 되었고 지금까지 굳어졌다.
울음은 멈췄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가 있어서 울었다. 속상해서 답답해서 무서워서 짜증나서.
그런데 왜 우냐고 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감정을 설명하는 말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말하면 약한 아이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감정은 말이 없으면 커진다.
속에서 조용히 부풀다가 어느 순간 퍽, 하고 터진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나는 또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그 이유를 찾는데 부단히도 오래 걸렸다.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왔는데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현관 앞 복도에 주저앉아 울었다.
오후 4시 햇살이 노랗게 기울던 시간이었다.
엄마가 왔다. 내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울면 엄마가 더 힘들어. 7살이면 기다릴 수 있어야지.”
그땐 내가 잘못한 줄 알았다. 슬픔보다 죄책감이 더 컸다.
울음이 엄마를 힘들게 했다면 나는 더 이상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 있을 때 울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난 7살이니까.
감정을 참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속상해도 넘겼고 억울해도 조용했고
화가 나도 먼저 미안하다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넌 참 이해심이 많아.” “너 참 성격 좋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상했다.
왜 나는 늘, 내 편이 아닌 것 같을까?
그렇게 크다 보니 감정이 고장이 났다.
느껴지지 않았다. 기뻐도 덤덤했고 아파도 말이 없었고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도 웃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문득 눈물이 났다.
아무 일도 없는데 울었다.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제때 울지 못해
눈물 저장 용량이 넘쳐 흘렀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 아픔이 쌓여 n년째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살기 위해 두드렸다.
상담 때 선생님께서 내 말을 조용히 들으시곤 나지막히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듣고 울었다.
나도 몰랐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유 없는 눈물이 아니라 이유가 너무 오래 묻혀 있던 눈물이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사라진다는 걸.
나는 이제 마음껏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는 대신 설명하는 사람. 억누르는 대신 꺼내보는 사람.
감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걸
이제는 믿어보고 보여주려 한다.
내 안의 어린 나는 여전히 울고 싶어 한다.
지금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울어도 돼. 이제는 누구도 널 혼내지 않아.
그 울음은 너를 지켜준 거였어.”
감정을 참는 대신
감정과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그건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