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마주하는 시간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
나의 작업실은 온통 꽃으로 가득 입니다. 이 꽃들은 꽃다발이 되어 전해지고 또 어느 곳에선 웨딩 부케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바스켓 한아름 꽂혀 있던 꽃들은 각각의 쓰임이 되어 나의 손을 떠납니다.
꽃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하지만 꼭 그만큼의 부담이 있습니다. 잘 해야 한다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앞섭니다. 그러다 사소한 실수에도 한 없이 무너집니다.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할때도 있어요. 왜 나는 이것 밖에 되지 않을까 하며 나에게 생채기를 내고야 맙니다.
이 때가 바로, 그림과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
나의 마음이 무너졌을 때, 도저히 반짝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가지고 있는 모든 그림 도록을 꺼내어 찬찬히 넘깁니다. 그 속에는 고흐와 모네가 있고 클림트와 샤갈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생경한 이름의 화가들이 무수히 많음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나의 고민은 당시 이 화가들이 짊어져야 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그림 속에서 길을 찾아야만 했던 그들의 고뇌, 캔버스를 와그작 씹어 버리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럴때면 오래전에 죽은 화가들이 되살아나 '나도 다 겪었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의 순간은 잊고 나의 그림 속에서 평안을 찾아라' 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그림 속 꽃에 시선이 닿습니다
저는 플로리스트니까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림을 보면서도 여전히 그 속에 그려진 꽃으로 시선이 향합니다. 그리고 고민해요. 화가는 그때, 어떠한 마음으로 이 꽃을 그렸을까. 혹시 내가 그림에서 위안을 얻는 것 처럼 화가는 꽃을 통해 위안을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홀로 재밌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찾을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다 뒤지기도 해요.
많은 경우는 꽃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며 그 꽃이 주는 색과 독특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것이예요. 하지만 꽃 하나 하나에 이유와 의미를 담거나, 자신의 상태나 처해진 환경을 꽃에 투영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리고 가끔은 저의 마음을 담고 싶을 때도 있었답니다. 아, 이 꽃은 이 화가랑 너무 잘 어울려 혹은 이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이 꽃으로 갈음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예요.
제가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지인들과의 만남과 수다 보다 홀로 있음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있기에 진짜 혼자는 아니예요. 그림이 주는 위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기꺼이 홀로 그림과 있기를 택합니다. 그림으로 이어지는 이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어 글을 썼어요. 그랬던 것이 벌써 두번째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묶음에선 그저 내 감정의 조각 처럼 그때 그때 기분 내키는대로 썼어요. 한마디로, 다 쓰고 보니 묶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하지만 두 번째 부터는 좀 더 순서를 세우고 제대로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바라는 것은, 글을 통해 하루의 불편했던 감정을 휘발 시킬 수 있도록 가볍게 읽혔으면 하는 거예요. 제가 그 만큼의 그릇이 될지는 의문 투성이지만 욕심을 내어 봅니다. 나의 짧은 글과 그 속에 담긴 그림이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 읽어주는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