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칼, 글라디올러스

by 모즈

19세기 파리 미술계에 남몰래 선행을 하며 수 많은 화가들을 후원한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바로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의 이야기 입니다.

상당한 부유층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상속 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화가들을 지원해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은 대표적인 화가들로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등이 있어요. 이들 대부분은 인상파 화가들이예요. 모네의 '인상, 해돋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상파 화가들은 당시 젊고 열정이 뛰어나지만 아직 평단으로 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앞서 언급한 화가들의 이름만 보아도 과연 '카유보트가 인상주의를 살렸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만약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은 거장으로 손꼽히는 화가들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붓을 꺾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유보트를 한낱 운 좋은 금수저로만 치부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비록 활동 기간에는 후원자로서의 명성으로 인해 그의 그림이 빛을 발하진 못했지만 사후 화가로서 재평가를 받으며 그의 작품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카유보트를 후원자로서 알지 못했다는 이유가 바로 그 방증 일거예요.


카유보트는 20대 중반으로 들어서는 1871년 부터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법학을 공부했고 실제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를 그림에 빠지게 했던건 1870년에 있었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아니었을지 추측합니다. 실제 이 전쟁에 참전했던 카유보트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에드가 드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와의 만남이 그를 인상파 화가가 되는 길로 이끌었어요.


파리, 도시 남자

Paris Street, Rainy Day 1877 Gustave Caillebotte 이미지 출처 wikiart

카유보트의 이름이 낯설다해도 이 그림 만큼은 한번쯤 본적이 있을거예요. '비오는 날의 파리 거리' 입니다. 나폴레옹 3세 시기 파리 재개발을 이끈 '외젠 오스망'에 의한 대대적인 도시 재정비가 있은 직후라 거리는 넓고 깨끗합니다. 행인들의 모습에서도 파리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파리에서 태어난 카유보트는 평생을 이 도시에서 보냅니다. 그림을 시작한 이후에는 가족별장이 있던 '예르'에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파리에 대한 애정이 컸던 것만은 사실이예요. 카유보트는 이 도시 만이 가진 매력을 다양한 색채로 담아 냅니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경계를 오갔던 만큼 같은 주제를 놓고 여러 스타일로 그려진 것을 보는건 색다른 재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wikiart

또한 카유보트는 유난히 남자의 모습을 많이 그렸어요. 당시 여성의 그림이 인기가 있던 것과는 사뭇 달라요.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노를 젓거나 노동을 하는 모습들도 많이 있지만 가만히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정장을 입은 채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많습니다.


생각하는 산책자, 플라뇌르


이미지 출처 wikiart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남자의 뒷모습이 많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카유보트의 고독의 투영이라 하지만 엄밀히는 산책 또는 배회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플라뇌르(Flâneur)’를 표현한 것이예요.

급격한 도시화를 겪은 파리에는 변화된 도시를 걸으며 관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이들을 ‘열정적인 구경꾼’이라 정의했는데요, 단순한 산책을 넘어 도시의 풍경, 사람, 문화를 예리하게 관찰하며 현대성과 자본주의의 특징을 사유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치면 여유와 호기심으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의 태도로 재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론 카유보트 그 자신도 도시를 관찰하고 사유하는 플라뇌르라 할 수 있겠죠?


화가이자 관찰자로서 그의 시선은 늘 도시를 향해 있었어요. 곧게 뻗은 도로, 새로 생긴 건물, 그리고 도시만의 비오는 풍경 까지도요. 하지만 그의 애정어린 시선이 빼놓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카유보트는 낮은 곳의 사람들- 도시 노동자에게도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었습니다.

The Floor Scrapers 1875 이미지 출처 wikiart

1875년에 그려진 카유보트의 대표작 '마루를 깎는 사람들'입니다. 웃옷을 벗은 노동자들이 거칠게 일어난 바닥을 다듬고 있습니다. 힘든 노동에서 오는 피로와 갈증을 이기기 위함인 듯 한 쪽에는 포도주 병도 보입니다.

화가의 시선과 세 노동자의 시선은 제법 비슷한 위치를 이룹니다. 카유보트가 이들을 관찰하기 위해 꽤 오랜시간 낮은 자세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어요.

카유보트에게 노동하는 사람들은 한낱 호기심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황제정의 나라, 프랑스 혁명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파리였기에 도시 프롤레탈리아를 그린 다는 것 자체로도 모함에 빠질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이 그림은 파리 살롱에 출품하지만 '저속하다'는 이유로 거절 당합니다.


부드러운 칼, 글라디올러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던 카유보트는 마흔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요절합니다. 그의 생이 조금만 길었어도 미술사에 더 많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숨이 다하기 전, 그는 긴 시간 자신을 돌봐준 가정부에게 재산의 일부를 남깁니다. 그리고 나머지 재산과 그림 등은 국가에 기증을 해요. 그의 죽음은 아쉽지만, 아름다운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먹먹한 마음을 안은 채 그의 그림을 보다가 글라디올러스 정물을 보게 되었어요.

Vase of Gladiolas 1887 이미지 출처 wikiart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경계를 오갔던 그 답게 정물에서도 두가지 스타일이 묘하게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글라디올러스, 이미지출처 pexels

글라디올러스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입니다. 길게는 1m까지도 자라며 보통은 70~80cm 정도예요. 종자 개량을 통해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어서 정원용이나 꽃꽂이용 모두 다양하게 쓰입니다. 마치 긴 칼과 같은 모양 때문에 라틴어의 칼:gladius에서 파생이 된 이름이고요, 같은 어원으로 검투사를 뜻하는 글라디에이터가 있습니다.

저는 이 정물을 보았을 때 카유보트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네, 르누아르, 쇠라 등을 후원한 미술계의 키다리 아저씨, 요절을 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가정부에게 일부 재산을 물려줄 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예요. 글라디올러스 처럼 날카로운 외면이지만 그 속은 한없이 따뜻한 ‘부드러운 칼’ 같은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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