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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Nov 10. 2022

케이크 넣어서 호박죽 끓이기

(나만의) 네덜란드 먹거리 이야기

전 호박을 좋아합니다. 영양찹쌀떡에 올라간 호박, 호박죽처럼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데요. 네덜란드의 채소 중에 우리나라 채소보다 맛이 덜 한 것 중 하나가 호박입니다.

이곳에서 쉽게 보이는 호박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애호박, 고구마, 옥수수도 호박과 함께 맛이 덜한 채소들입니다~ ㅠㅠ

주황색이 눈에 쏙 들어오고, 동그랗거나 기다란 모양이 예쁘지만, 딱히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는 게 특징이죠. ㅎㅎ 그래도 탐나게 예쁜 호박을 가지고 피클, 찐 호박, 호박 수프, 호박 오븐구이, 호박 테린느 뭐 여러 가지 요리를 해봤었는데요.

손이 많이 가서 자주 해먹지는 못하는게 호박입니다. 오른쪽처럼 대충 쪘다가 완전 호박맛 물이 되어버린 적도 있어요~ 호박피클은 에스토니아의 음식이라더군요.

드디어 한국 늙은 호박만큼 풍미도 있고 달달하고 마음도 따듯하게 해주는 호박음식을 만들어봐서 공유합니다~

바로 네덜란드식 케이크 ‘크라우드 쿡 (Kruidekoek)’을 넣어 만드는 초간단 호박죽!


스펀지케이크의 스펀지가 폭신폭신하고 가볍다면, 이 크라우드 쿡은 매트리스처럼 더 단단한 느낌입니다. “매트리스 케이크”라고 불러도 될 거 같아요.ㅎㅎ

보통 버터를 올려서 아침에 커피하고 먹거나 간식으로 먹는데요. 찐덕, 꾸덕한 느낌에  달짝지근한 맛입니다.

지난번 소개한 네덜란드식 "모닝빵" ‘온트바이트 쿡 (Ontbijtkoek)’하고는 비슷하면서도 재료면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모닝빵”은 계피, 클로브, 넛맥을 넣고, “매트리스 케이크”는 여기에 생강, 고수, 올스파이스, 메이스, 카다멈까지 들어간다고 하네요. 실은 제게는 그런 다양한 맛은 잘 느껴지지 않고 계피류의 맛이 진하게 나는 정도입니다. 주재료는 밀가루랑 흑설탕이에요.


애용하는 장보기 앱에서 덤으로 크라우드 쿡을 주는 바람에 오랜만에 먹어봤네요. 그리고 한 입 베어 불며 든 생각이, 이 빵이 존재하는 이유는 요리에 쓰이기 위해서다! (그냥 먹기에는 별로 맛이 없어서…)


예전에 네덜란드식 미트볼을 만들 때 레시피 검색을 하다가 어떤 셰프가 이 쿡을 쪼개 소스를 만드는 걸 봤거든요. 빵의 밀가루가 점성을 만들고, 생강, 계피 같은 고기랑 궁합이 잘 맞는 향신료로 들어가 있으니 걸쭉한 겨울 음식을 만들 때 딱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방에 둔 호박에 눈이 간 순간, 이 "매트리스 케이크"를 넣어 호박죽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실험 정신이 생겼어요 ㅎㅎ달콤하니까 밍밍한 호박도 변하게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준비물은 간단합니다. 귀찮아서 껍질 채 자른 호박 1 (씨앗은 뺍니다), 크라우드쿡 1 슬라이스 혹은 1팩, 마늘 한 톨, 두유 & 물은 호박이 반쯤 잠길 정도로만. 소금 & 후추 간은 나중에. 쪄둔 고구마가 눈에 보이길래 고구마도 넣었습니다. 고구마 반개! 맛있어져라~

스넬르옐르가 가장 유명한 상표명입니다. 이 곳의 고구마는 엄청 주황색이에요.

그리고 압력솥에서 고압으로 20분. 다 되었을 때 블렌더로 갈아주니 걸쭉한 호박죽이 되었더랍니다.

신기하게도 향신료의 맛은 느껴지지 않고 그 담백하면서도 달큼하고 입에 착 붙는 늙은 호박죽이 만들어졌어요.

간을 맞추고 없는 새알 대신 잣이나, 파마잔 치즈를 얹어주면, 맛있는 네덜란드-한국식 호박죽 탄생입니다~

가을이라 호박이 또 할인행사라 이번주에도 사게 됩니다. 이 호박죽이 맛있긴 한데요, 실은 호박죽 때문에 크라우드 쿡을 사기는 싫어지네요 ㅎㅎ 괜한 군것질 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대충 잘라 오븐에 구워먹기보다는 이게 훨씬 맛있으니, 한 번 더 만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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