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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Dec 30. 2022

브런치에 올리는 100번째의 글

벌써 1년 반 전입니다. 동생부부가 네덜란드에 오게 되었던 게요. 다른 곳도 아니고 저희 남편이 태어나 자란 곳, 제가 8년이 넘게 산 이곳에 오게 된 가족이 반가웠죠. 그래서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 이메일로 팁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꼭 가보면 하는 곳, 추천하는 음식들, 문화차이, 집 찾는 방법, 이런 내용으로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메일이 너무 길어지더군요. 그리고 짧게 짧게 쓰느라고 초고농축 가이드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게는 이런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섬세하게 풀어놓아보자 해서 시작한 게, 브런치였습니다.  


계기는 그랬지만,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무언가 창조하는 게 그리웠어요. 회사생활로는 채워지지 않는 몇 프로였죠. 마케팅적인 목적 없이, 수입에 대한 의무 없이,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생활인으로 받은 영감을 내 식으로 소화해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이 하고 싶었습니다. 

왜 글쓰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가장 쉬워서가 아닐까 싶어요. 이대로 10년을 꾸준히 더 글을 쓴다면 뭔가 달라져있겠지, 이런 무작정 마음으로 브런치를 저는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수백 년 된 더블데커 오븐으로 장작을 피우고 그 잔열로 빵을 굽는 두 남매에 대한 비디오를 봤습니다. 오래된 기계로 손수 만드는 빵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그리고 그냥 자기 길을 가는 모습이 반가웠어요. 인스타그램으로 어떻게 하면 더 핫 해질까, 어떻게 하면 프랜차이즈를 더 늘리고, 어떻게 하면 거대 슈퍼에 들어가 생산량을 늘리고 사업을 키울까, 이런 상업적인 계기보다,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쩌다 읽어본 브런치의 글에 수익도 없고, ‘좋아요’나 댓굴, 구독자수로 표현되는 여러분의 인정도 없고, 출간의 기회도 적은 브런치를 왜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더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처럼 그냥, 쓰고 싶어서, 그래서 계속 브런치를 하는 게 아닐까요.


글이 모일 때쯤부터, 100개의 글을 쓰게 되면 어떤 축하를 나에게 해주고, 독자님들에게 전할까 상상해 봤습니다. 100개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있어서요. 그 정도면 브런치의 나를 장하게 여겨도 되겠다 싶었지요. 네덜란드 쿡 (Koek, 전통과자류) 파티도 떠올려 봤지만, 이렇게 글로써 100번째 글을 기념해 봅니다. 전 글의 수로 남겨진 제 발자취와 꾸준함을 기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보따리가 한 번 푸니까 멈추지 않네요. 여행팁, 음식팁, 암스테르담 관광팁, 문화관찰기, 인테리어 이야기, 집 짓는 이야기, 임신 이야기…. 그래서 앞으로도 네덜란드 문화관찰지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생긴 습관 혹은 특이사항은, “아 적고 싶다”라는 느낌입니다. 어쩐지 좋은 소재거리라 꼭 적지 않으면 찜찜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정리 한 번 들어가서 공유하고 싶어지죠. 어느 곳의 누군가 한 명에게는 재밌거나,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요. 바쁜 일상에 쓰는 일을 미루다보면, 한 번 쓸 때 갑자기 너무 글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느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즐거움이 계속된다면, 통계숫자의 짜릿함, 출간, 협업 이런 거만큼 의미 있지 않을까요. 


다음번 기념은 언제가 될까요. 아무래도 출산과 육아로 바빠질 테니, 적어도 12개의 글을 12개월 안에 쓰는 게 소박한 목표가 될 것 도 같습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2022가 따스했길 바라며, 2023년에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 많으시길 바라며. 저의 소박한 기념글을 마칩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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