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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Mar 26. 2024

8년간 숙제가 없는 학교 실화?

네덜란드의 아이들의 특별한 학교

네덜란드의 우리 집 바로 옆이 초등학교다. 만 4살부터 12살 때까지 다니는 학교다. 아침이면 이제 한 살이 된 아기와 창 밖으로 엄마 혹은 아빠와 자전거를 타거나 손을 잡고 걸어서 형, 누나들이 학교 가는 모습을 구경한다. 그리고 하교하는 모습도 보는데, 등교한 지가 언젠데 벌써 집에 가나 싶다. 그리고 아기와 바깥 산책을 나가면 놀이터가 떠나가라 시끄럽게 놀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네덜란드 학교는 뭘까, 놀이터인가 하는 궁금증에 여러모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기가 두 살이면 그 학교에 미리 대기를 걸 수도 있어서 이제 좀 알아둬야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알게 된 네덜란드의 교육시스템은 정말 신기하다. 우리나라랑 다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안 하고도 안전하고 행복하고 부유한 나라가 이뤄진다니 새삼스럽기도 하다.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도대체 공부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야자도 하고, 과외도 하고, 학원도 가고, 때로는 교복을 입고 자 아침 일찍 준비하기 쉽도록 했던 게 내 학창 시절이다.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땡땡이치고 노래방 간 기억, 매점에서 사 먹던 실론티나 빵, 친구들하고 떠들던 쉬는 시간이 추억처럼 생각나기도 한다.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많은 회사이다 보니 동료들 중 나처럼 십 대를 공부에 바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한국인, 그리고 나한테 남긴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 공부하지 않는 게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네덜란드 아이들이 행복하다는데, 결국 뭘 강압적으로 해야만 하는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성장기 아이들이 아침밥, 점심밥으로 빵에 초콜릿을 뿌려 먹는 건 보너스 행복인 것 같고.

출처: Unsplash

네덜란드의 의무교육은 만 4살부터 시작이다. 12살까지 다니는 학교가 바시스 스콜 (Basisschool, 초등학교)이다. 국가에서 1년의 940시간을 아이들 커리큘럼에 안배하라는 지침을 주고, 그러면 각 학교들이 자율적으로 시간표를 짠다. 그래도 공립학교라면 대략적인 패턴은 있다. 수요일, 금요일에는 12시에 학교가 끝난다. 월, 화, 목에는 오후 3시면 수업이 끝난다. 5교시, 6교시까지 공부하고 10분 휴식 시간이었던 내 초등학교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럼 12시와 3시 이후부터 애들을 봐야 하는 맞벌이 부부라면 어쩌지 싶을 거다. 그래서 부부가 주 4일 근무를 교대로 하거나, 집에서 일하거나 하교에 맞춰 집에 오고 애들을 본 후 밤에 더 근무하는 엄마, 아빠들이 많다. 학교가 그렇게 일찍 끝나면 애들은 그다음에는 뭐 하나?

그냥 논다.

초등학교 8년간 숙제가 없다.

정말, 정말로, 초등학교 내내 숙제가 없다.......


방학도 일 년에 네 번이다. 긴 여름 방학, 일주일 정도의 봄 & 가을 방학, 그리고 그 중간쯤 되는 겨울 방학. 방학 일기 이런 것도 없다. 그러면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하나? 애들은 누가보나? 애들은 뭐 하고 크나?

그냥 논다... 학교 밖에서 공부 안 한다...

스포츠 클럽에 필드하키를 치러 가거나 여름에는 다이빙을 하러 동네 개울가에 가거나 동네에서 공차기를 하거나 트램볼린을 한다. 인간이 자라는 데 공부도 중요하고 노는 것도 중요하고 아무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은데, 이곳은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만큼이면 되고 그다음은 놀면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학교도 만 4-5살 반은 놀이 위주다. 그리고 만 6살 때부터 읽기와 쓰기 교육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네덜란드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수영과 자전거 교통수칙을 배운다.


수영교육에 대한 한 마디. 나라의 대부분이 해수면 아래라 물이 범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생존이 걸린 수영에 아주 진심이다. 자유형, 평형 같은 걸 배우는 게 아니라, 머리를 내놓고 치는 개헤엄을 배운다. 마지막 졸업장을 따려면 코흘리개 아이들이 옷을 다 입은 채로, 물에 빠지는 시나리오를 만든다. 그리고 옷을 입고 헤엄쳐 물속에서 터널 같은 것을 통과해 빠져나와야 한다. 물안경, 수영모자, 수영복, 튜브, 이런 건 장난이다. 어린아이들한테 너무 한 것 같기는 해도, 다들 통과하는 걸 보면 미리 가르치는 게 맞다 싶다. 실제로 여름이면 다리 위에서 다이빙을 하고 물에서 수영하며 노는 네덜란드 아이들, 청소년들을 보면 걱정이 되긴 한다. 주변에 어른들이라고는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얼음판에서 노는 애들을 지나가며, '제발, 내 앞에서, 빠지지 말아 줘',라고 기도하며 지나가기까지 했다. 그래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디플로마를 따는 것은 네덜란드 유년시절 필수다.

암스테르담에서 물놀이하는 아그들 (출처: 본인)

만약 학교 수업이 어렵다면? 따라가기 힘들다면? 그래서 일 년 과정을 다시 해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표현은 유급, 1년 꿇었다 등 좀 치욕적이다.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꿇는 게 아니고, 그냥 "계속 앉아 있는다 (Blijven zitten, 블라이븐 지튼)." 그러니 학생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예습했다 치고 수업을 한 번 더 듣는 거다.


옆에서 보면 팽팽 놀기만 하는 학교 같은데 그래도 일 년에 두 번 시험이 있다고 한다. 학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는 평가다. 그 결과는 본인과 부모님만 알게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시험점수와 선생님의 의견으로 12살 이후의 진로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이곳은 중학교 때부터 직업 위주의 진로를 선택할 것인지, 고등교육을 더 받을 것인지 나뉜다. 그래서 멍 때리고 그냥 학교 다니다가 선생님 한 마디에 13살부터 대학 가는 건 마음에서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도 있다. 초등학교 다음은 그냥 중학교가 아니라, 나중에 차를 정비하는 기술공 같은 직업을 하고 싶다면 가는 학교가 있고, 나중에 의사 같은 직업을 하고 싶다면 가야 하는 학교가 있고, 그 중간 정도 직업을 갖고 싶다면 가는 학교가 있다. 이 3개 학교 그룹의 공부 수준이나 교육 레벨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학교 타입을 바꿀 수 있지만, 대부분은 13살 때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걷게 된다니, 좀 무섭다. 그냥 날 것 그대로의 재능을 바탕으로 진로가 생기는 걸까. 목수든 변호사든 세금 내고 나면 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 비슷한 게 이 나라이니 사교육을 시키고 방과 후 교육도 시켜 공부머리를 더 키울 이유가 적은 것도 같다.


네덜란드의 학교가 신기한 이유는 또 많다. 대학교에 명문대가 따로 없다. 모든 대학이 다 명문대 취급이다. 드물게 어느 학교는 어느 과가 유명하다 정도는 있어도, 수도에 있는 암스테르담 대학이 가장 좋은 건 아니다. 그냥 집에 가까운 데 가는 분위기다.

그리고 사립학교라고 더 좋은 게 아니다. (좋다는 게 무엇일지도 토론의 대상이지만). 사립은 보통 종교 (가톨릭, 신교, 이슬람, 힌두)에 따라 혹은 교육 이념 (몬테소리, 달튼 등)에 따라, 일반적인 커리큘럼과는 다른 커리큘럼을 가지고 싶을 때 만들어진다. 그러니 대부분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냥 두 번 생각 안 하고 국립학교에 보낸다. 기숙사 학교인 보딩스쿨은 영국의 사립학교 시스템 덕에 우리나라에는 명문가 자제만 가는 사교클럽 정도로 이미지가 각인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안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가족과 떨어뜨려 키운 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며, 부모의 책임을 등한시한다는 생각들인 것 같다. 그래서 부모의 책임을 다 하라고 국립학교들이 그렇게 일찍 끝나는 것인지 ㅠㅠ 학원이라는 콘셉트도 없는데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고 아이들을 어떻게 발달시켜줘야 할지 벌써부터 궁금한 건 외국인 같은 나뿐인가? 그냥 놀리면 되는 건가?


팽팽 놀며 더빙 안된 미국 TV를 보고 자라 영어를 잘하기도 하고, 영어 학원에 가서 열심히 언어를 습득해 영어를 잘하기도 한다. 도착점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네덜란드는 애초에 그 '도착점'이라는 것 (삶의 방식이랄까, 누리고자 하는 것이랄까?) 도 다양하지만, 그 방법은 자기가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게끔 부모나 선생님은 가능한 직접적인 개입을 줄이는 것 같다. 학교에서 잘 가르치고 잘 배우면 숙제는 왜 필요하냐는 게 초등학교의 지론이다. 공부는 그 정도만 하고 학교 바깥에서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법으로 배우고 자라나라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교육에는 모범답안은 없는 것 같다. 네덜란드 혹은 유럽 동료들과 비교할 때, 십 대의 대부분을 공부하는데 쓴 나는, 그들보다 끈기나 정신적인 강인함이 더 있다고 생각해 본다. 의자에 붙어 앉아하기 싫은 것이 하기 싫다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공책에 낙서를 하며 책 위로 졸며 딴생각하며 그러다 시험에 닥쳐 눈에 불 켜고 공부하며 그 반복되던 생활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그냥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게끔 하진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난 숙제도 괜찮은 것 같고, 예복습도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교육의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가장 중요한 건 그 출발점인 우리 아이겠지. 우리 아이는 배우는 것을 좋아할까? 어떻게 배우는 것을 가장 좋아할까?


+구독자 님들께. 동생내외를 생각하면서 쓰던 글에는 친숙한 반말을 쓰다가, 어느 독자님이 불편해하시는 것을 계기로 존댓말로 어투를 바꾸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에게 가장 편안해 보이는 일반 에세이 형으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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