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여행
여름휴가로 코로나 검사 따위는 필요 없는 네덜란드 안에서 그냥 먹고 걷는 단타 국내여행을 가기로 했어. 홍수피해가 아직도 큰 남부지역은 피하고 북부에 한 번도 안 가본 곳 중심으로 2박 3일 트웬테(Twente)를 시작점으로. 쉬고 머리를 식히기에는 그 보다 좋은 게 없겠지.
1년여 전에 트웬테에서 아주 가까운 독일의 노드혼 (Nordhorn)에 빌트인 주방을 사러 갔었거든. 네덜란드보다 20%는 더 저렴해서 차비를 마다하고 갔는데,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간 지 1시간 30분 만에 독일 느낌이 나서 신기했었어. 이렇게 여행으로 다시 가니 참 좋더라. 사실 일정이랄 것도 없이, 트웬테 깊숙한 곳의 윌머스버그 (https://www.wilmersberg.nl/)라는 호텔의 패키지가 괜찮아서 수영하고 사우나하고 밥 먹고 (시간이 남고 날씨가 허락한다면) 가까운 곳을 돌아볼 예정이었어.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좋더라고. 호텔 주변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이 걷기 참 좋고, 전통이 잘 보존되어있어 여행하며 볼 것도 많아서 추천할게.
윌머스버그 호텔은 시원하게 펼쳐진 정원과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가꾸어진 후원만으로도 매료되기 충분한데, 서비스랑 시설 어디 하나 빼놓을 점이 없었어. 수영장과 사우나도 코로나로 1 가족만 예약 운영해서 편하게 쓸 수 있었고, 패키지 일부였던 3코스 디너도 맛있으면서 좀 특이한 메뉴 구성이었어. 어디에 앉아도 그림인 호텔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주변이 참 걷기 좋아. 림버그와 트웬테가 네덜란드의 투스카니라고 불리는 이유는 평평한 경사도 0의 네덜란드에서는 드물게 나름의 언덕이 있기 때문이야. 호텔에서 나와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면 그냥 그 녹음에 마음이 편해지더라.
네덜란드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아래 사진처럼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미니 책장이 있어. 생각지도 않게 발견한 숲길에 있는 책장이 운치가 있더라. 옆에 써인 글씨를 읽어보던 남편이 이 지역 사투리로 쓰여 있다고 해. (예를 들어 책은 Boek이 아니라 Book 하고 위에 점 두 개씩 찍혀있는 것).
석양이 정말 멋진 어느 날 저녁에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열기구까지 나타나서, 여러모로 로맨틱한 기분이 드는 호텔이야.
호텔 근처의 동네 드 루트 (De Lutte)까지 한 2.5km여서 아침을 먹고 산책삼아 걸어가 보기로 했어. 근교의 가장 큰 동네(?)까지 걸어보니 정말 네덜란드의 시골이더라. 네덜란드는 사람들의 너무 빼곡히 많이 살아서 (유럽에서 가장 밀도 높게 사는 나라래) 이렇게 집들이 뚝뚝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던 걸? 그리고 꼬꼬댁 닭들, 양들, 예전 방식대로 지어진 감자창고 (사진 좌측), 하이킹 루트까지 힐링 삼아 걸어가니 즐겁더라.
그리고 도착한 드 루트는 그냥 작고, 관광객이 들리는 동네야. 참새방앗간이라고 근처 베이커리에 가서 트웬테의 지역 빵을 사봤지. 베이커리 점원에게 물어보니 크렌테웨그 (Kreantewegge)라고 건포도 빵을 추천하더라. 촉촉하고 부드럽고 약간 시트러스 향, 계피향이 곁든 남다른 건포도 식빵이었어. 그리고 내가 조사해간 좀 더 흥미로운 코작 (Kozak)도 있길래 먹어봤지. 코작 추천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빵인데 마지펜과 마시멜로 같은 크림을 넣은 롤케이크를 잘라서 초콜릿 코팅을 한 거야.
그렇게 당을 충전하고 우리는 근처의 Arboretum Poort Bulten이라는 공원에 갔어. 2000여 종이 넘는 나무가 있는 공원이라는 말에 혹해 갔지만, 암스테르담 집 근처 베아트릭스 공원 (Beatrix park)이 더 좋더라.
트웬테 여행의 예상치 않은 발견이 오트말숨 (Ootmarsum)이야. 정말 자연만 있는 시골인 줄 알았는데!
오트말숨에 있는 민속촌에서는 예전의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어. 처음으로 그림에서만 보던 과거 네덜란드의 시골집들을 보았어. 물론 방을 갖춘 좋은 집들도 있었지만, 가축들과 같이 살던 집도 있더라구. 한 켠에는 가축우리가 있고, 다른 한 켠에는 아궁이, 벽장 침실이 있는 아주 단순한 집의 구조를 보면서 정말 추웠겠다 싶더라 (사진 좌측).
나무 공예품을 만들던 모습, 물레, 상점, 브루어리, 가톨릭 모임을 막고 종교생활을 하던 미혼 개신교 여성들이 모여 살던 곳, 감자창고, 가축이나 농경 기를 보관하던 곳, 어쩐지 반 고흐의 의자가 생각나는 의자들까지 둘러보니 어쩐지 네덜란드 사람들의 본질에 가까워진 느낌이었어. 단순하고 종교적이고 소박한 삶이랄까?
그리고 민속촌인데도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들이 운영하나봐. 아침 모임도 있고, 직접 배관하는지 땅을 파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정겹기도하고 그렇게 직접 가꾸니까 전통이 아직까지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위키피디아에서 트웬테에 대해 읽어보니 이 지역에는 나버스콥 (Noaberskop)이라는 미덕이 있다네. 이웃들끼리 도와주거나 충고를 달라면 해주는 생활 도덕이라고 해. 그런 미덕이 지금까지 지켜지는지, 어쩐지 맘 좋고 살기 좋은 동네 같아.
민속촌을 조금 나와서 걸으면 오트말숨의 중심가야.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서 정말 여행 온 기분이 들어. 유럽 휴양지처럼 갤러리, 카드샵, 옷가게, 음식점도 많고. 그냥 걷고 즐기기에 딱 좋은 작은 마을, 한 번 가봐.
오트말숨에서 한 30분 운전하면 샬란스 후블룩(Sallandse Heuvelrug)이라는 네덜란드의 국립공원이야. 하이킹하기 좋아. 그리고 전기자전거나 마운틴바이크를 하기도 하더라. 워낙 넓어서 중장비를 갖추고 가도 좋겠지만 우리는 그냥 천천히 걸으면서 둘러봤어. 정말 아름다운 공원이라 꼭 가보기 바랄게. 여태까지 본 공원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언덕이야. 언덕에 언덕이 이어진 모습이 같은 풍경도 더 아름답게 하고 흥미롭게 하는 것 같아. 특히 보라색의 헤더꽃 (Heather, 네덜란드어로는 헤이드 Heide)이 만발하는 들판이 끝이 없어. 헤더사이로 소나무도 있고, 번개 맞은 나무도 있고, 구름도 펼쳐지고. 지금부터 한 2주-3주 후면 사방이 더 보라색으로 물든 다니, 네가 갈 때는 시간이 잘 맞았으면 좋겠다.
그냥 힐링하러 간 아무도 가지 않는 동네에서, 뜻하지 않게 미식을 하고 관광까지 한 느낌이랄까. 트웬테에 가게 되어서 좋았어. 전통도, 주변의 자연환경처럼 잘 보존되고 가꾸어진 보석 같은 곳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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