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을 하고 다음 날 눈을 떴는데, 익숙한 천장이 그대로 보인다면? 그건 NG다. 용기와 희망은 커녕, 두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올 것이다. 나는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밀어붙이는 힘이 센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나를 그냥 그 상황에 밀어넣는 것.
해외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물론 무작정 머리부터 들이민 건 아니다. 쿠알라룸푸르에 이주 솔루션이 있었고, 나는 그 솔루션의 도움을 받았다. 쓰고 보니 사실 내가 직접 한 건 마음먹고 티켓을 끊은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이 나를 전혀 다른 무대로 데려다주었다.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산다고 하면 이어지는 질문들이 있다.
“언어는?”
“병원은 괜찮아?”
“밥은 어떻게 먹어?”
쿠알라룸푸르, KL은 한국 사람들에게 꽤 편한 곳이었다.
- 언어? 번역기도 있고, 챗지가 내 목소리가 되어준다.
- 병원? KL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 밥? 보쌈, 치킨, 순두부찌개 다 먹었다. 식당도 많고 배달도 많다.
나머지는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건 ‘암묵지’였다.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
말이나 글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몸으로 배는 지식. 행동과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지혜.
막막하고 두려웠던 순간들도 많았다. 삶은 언제나 희망차고, 계속 잘 되기만 하진 않는다. 영화도 그렇다.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혼란이 다 있어야 이야기가 완성된다.
나는 이 모든 감정을 껴안기로 했다.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혼란을 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자, 내가 서 있는 무대가 진짜로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 형광등 아래에서 보내던 내가, 이제는 이런 하늘을 보게 됐다.
- 예쁘고 멋진 곳을 찾아다녔다.
- 멋진 공간에서 살며 새로운 일상을 맞이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의 하루는 분명 새로운 시작이었지만, 사실 이 모든 일의 씨앗은 그보다 앞서 있었다. 내가 진짜 달라지기 시작한 건, 단순한 퇴사도 비행기 티켓도 아니었다.
원하는 삶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내 대답이 이끌어다 준 온라인 수업.
그때 내 안의 잠금장치가 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