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자가 가장 혁명적이다
고독을 즐길 때 비로소 성장한다고?
사람은 고요 속에서 바뀐다. 고요는 내적 혁명의 단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고요가 내면의 동력학에서 나오는 능동 가치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 가만히 있는 자에게 고요는 다가오지 않는다. 고요는 능동의 산물이다. 고요한 자가 가장 혁명적이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부단히 묻고 절망 속에 꿈꾸면서 변모되어간다. 꿈꾸는 자의 집은 고요이고, 그가 움직이는 방식은 성찰이다. 홀로 있는 고요함이 존재의 결핍을, 현존의 누락을 살펴 묻게 하는 것이다. 충일에 대한 자족이 아니라 결핍에 대한 이 절망적인 물음으로 하여 고요는 꿈꾸는 자의 실천적 에너지로 빛난다.” 문광훈, <숨은 조화>
고요는 마음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제 존재를 파릇하게 드러내며 빛난다. 고요는 마음의 가능성을 열고, 실천의 계시啓示로 나아가며, 아직 아무것도 아님을 됨으로 갱신의 눈부심에 이르게 한다.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어디에서 구할까」, 장석주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홀로 이끄는 자영업의 경험이 저에겐 큰 성장의 시간이었어요. "오랜 꿈은 져버렸고, 보고 싶은 친구들은 멀리 있고 어떡하지? 하지만 어쩌겠어 울면서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보기로 했어요. 고독과 고요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까지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제는 없으면 안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의 우울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한동안 모든 관계를 단절했어요. 나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줄 수 있을 때까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부터 바로잡기로 했어요.
내면의 동력학에서 나오는 ‘능동의 가치’, ‘능동의 산물’. 고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왜인지 무색무취의 흑백黑白 필름이 떠올라요.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포커스를 맞출 때 흑백 영상으로 전환이 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창작자의 의도에 방해가 되는 고정적인, 불변의 요소는 가능한 절제하고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에 온전히 집중되게 함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전달하는 거예요. 혼자라는 외로움, 슬픔과 절망의 단계를 지나 내면의 자아(Ich)에게 물음을 던지고 답을 받습니다. 잠시 현실을 망각하여 불필요한 색을 제거하는 거예요. 흑백필름 속 자신을 세워놓고 의식-무의식을 오가며 섬세한 관찰을 하는 거죠.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고요의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독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저는 책 한 권 들고 자연 속으로 들어간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고독을 즐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