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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Dec 27. 2022

식당에는 없는 메뉴 이름, '아무거나'

  - 직장에서도 원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라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요?"라는 팀원의 질문에 "아무거나요."혹은 "아무거나 좋아요."라고 답한 적이 있는가? 매일 점심시간마다 돌아오는 중차대한 질문에 그냥 쉽게 '아무거나'라고 답해왔다면 지금부터 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식사시간이었다. 회사의 공식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었지만 팀원들은 다들 5분 만에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빨리 먹어도 식사하는데 최소 10분~15분이 걸렸다. 예닐곱명의 나이 지긋한 팀원들은 5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도 내가 식사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아마 막내 팀원에 대한 배려였을게다.


  그러나 팀원 모두가 나의 젓가락질 하나하나를 쳐다보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먹다가 체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는 소중한 점심식사를 대충 먹고 숟가락 내려놓기는 싫었다. (참고로 나는 먹으려고 일하고, 먹으려고 운동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날 큰 맘 먹고 팀원들에게 말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다들 식사 마치면 먼저 가라고 말이다. 혼자 남아서 천천히 마저 다 먹겠다고. 그러자 정말 그래도 되냐 팀원들이 반색하며 물었다. 알고 보니, 남 밥 먹는 것 쳐다보고만 있는 것이 팀원들에게도 곤욕이었던 것이다. 이후 우리는 행복하게 같이 식당에 가서 5분 뒤에 쿨하게 헤어졌다. 남겨진 나는 비로소 음식 하나하나의 맛과 향을 즐기는 혼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어느 해외법인으로 출장갔던 때의 일이다. 원래 숙박비 등의 출장비는 소속되어있던 본사에서 지급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만큼은 법인 지원 프로젝트가 너무 장기화되어서 본사가 아닌 법인에서 출장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그러자 법인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그전까지 머물던 호텔의 ⅓ 가격인 모텔로 숙소를 옮길 것을 요구해 왔다. 일개 사원이었던 나는 그 요구대로 모텔로 숙소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두 개의 숙소 말고 다른 옵션은 없었다.)


  가성비가 좋다고 알려진 그 모텔은 알려진 바와 달리 객실 청결도나 식당의 질이 엉망이었다. 게다가 출근한 사이  물건이 없어지는 도난사건까지 두 번이나 발생했다. 어느 날  도난사건으로 모텔 프런트 데스크에 항의를 하고 출근했다가 돌아오니 도난당한 물건이 객실에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깨끗이 청소되어 있어야 할 화장실에 오물이 칠해져 있었다. 도난사건 범인의 복수(?)라고 짐작되었다.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단 며칠도 못 참고 세 배나 비싼 호텔로 다시 옮기겠다고  철없고 이기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버텨왔었다. 그곳에서 당한 일을 말해도 회사는 믿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에 혼자 끙끙 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호텔로 다시 숙소를 옮기고 싶다고 용기 내어 법인에 말했다. 다행히 법인은 나의 말을 믿어주어서 숙소를 다시 옮길 수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는 잘 말하는 것도 회사에서는 왠지 어려워진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회사가 저절로 알아주는 일은 없다. 차라리 혼자 남더라도 천천히 밥 먹는 게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도 팀원들도 계속 가시방석 같은 점심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숙소가 불편하다고 용기 내 말하지 않았더라면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불안하게 지냈어야 할 것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라면 직접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다르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로 꺼내놓아야 상대방과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비록 내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수도 있으나 말을 해야 협상이라도 시작되는 것이다.


  점심식사로 뭐 먹고 싶냐고 물어오는 팀원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아무거나'라고 대답하지 마시라. '아무거나'는 식당에 있는 메뉴 이름이 아니다. 그것으로는 팀원들이 식사메뉴를 정할 수가 없다. 원하는 것이 없다면 적어도 먹기 싫은 메뉴라도 알려주시라. 특히,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며 '아무거나'라고 대답해 놓고선 막상 선정된 메뉴에 맘이 불편한 적이 있다면 앞으로는 용기 내시기를.




*관리담당 : 법인장을 보좌하며 법인의 모든 살림을 담당하는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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