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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Jan 02. 2023

 공들여 쓰레기를 만들어내다

- 직장 내 인적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이유

  사원 시절 어느 일요일이었다. 화장실에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팀장님의 전화였다. 엥? 일요일에 왜 전화를 하셨지?라고 궁금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의 목소리가 영 좋지 않다. 용건인즉슨, 기업 하나를 분석해서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 후 임원회의 때 부사장님 앞에서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아니 이게 왠 날벼락. 다음날 출근하면 자초지종 설명해주겠다는 팀장님 말씀에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리가 하얘졌다. 부사장님 지시인 데다가 임원분들 앞에서 보고를 해야 한다니.. 게다가 주어진 시간이 고작 일주일이라고? 청천벽력 같았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부사장님의 지시는 미국에 있는 Z사(社)라는 협력회사의 현 상태를 분석해서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거래 대금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지, 향후 회사의 건전성은 밝아 보이는지 등 말이다. 그 보고를 바탕으로 우리가 그 회사와 거래를 계속 이어갈지 말지 임원회의에서 의사 결정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중차대한 보고를 일개 사원에게 시킨다고? 달랑 일주일 시간만 주고? 이것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황당하지 않은가? 사실 회사에서 대리, 과장도 아닌 사원이 임원회의에서 보고를 한다는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들은 적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거부권이란 것은 없으니 그냥 입 닥치고다물고 보고 준비를 시작할 수 밖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오질 않았다. 우선 그 회사는 미국 회사여서 국내 자료로는 현 상태를 분석하기 어려웠다. 관련 자료를 손쉽게 찾는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방법을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무턱대고 회사 이름으로 검색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엄청난 시간이 걸린 검색 끝에 미국에 공시된 그 회사의 IR(Invester Relations) 자료 등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당 자료에 포함된 재무제표 등을 보고 현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 막막했다. 사실 나는 학부 때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목 중에서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회계학이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회계의 ‘회’자도 잘 모르는 채로 졸업을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회사에 밝힐 수 없었다.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한테도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대며 고생했다. 밤낮을 잠 안 자고 이것 저것 공부해가며 간신히 분석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급하게 팀장님 검토를 살짝 거친 후에 드디어 임원회의에 들어갔다. 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정신없이 보고를 마쳤다. 무사히 잘 마쳤는지 궁금하신가? 일단 ‘보고’ 자체는 잘 끝났다. 중간에 끌려나가지도 않았고 혼내는 사람도 없었다. 다 마친 후에 수고했다는 말도 들었다. 솔직히 그 순간에는 보고를 잘 끝냈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편으로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진짜 잘난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보고 마치고 회의실서 나와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보고서를 공유받았던 같은 팀 차장님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런 걸 보고서라고 만들어 냈냐?”


  그 차장님은 회사에서 오랫동안 재무, 회계 등의 업무를 했던 베테랑 직원이었다. 중국법인에서 오랫동안 돈관리를 담당하며 엉망이었던 법인의 살림을 정상화시킨 공로로 유명했다. 우리 팀에서도 해외법인의 재무/회계 프로세스 개선을 주로 담당하던 팀원이었다. 그 차장님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그때 차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소위 명문대 나온 애들 중에 회사에서 빨리 성공 못하는 애들이 있어. 그 이유가 뭔지 알아? 그 애들은 자기들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해서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거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묻지 않고 혼자 공부해서 해결하려 하지. 그런데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혼자 공부한 사람이 그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를 따라갈 수 있겠어?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훨씬 빨리 배울 수 있는데 그걸 안 해서 성과가 빨리 안 나오는 거야..”


  아차 싶었다. 이 보고를 도와줄 수 있었던 최고의 전문가가 바로 우리 팀에 있었는데, 나 또한 혼자 끙끙대며 준비하느라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었다. 보고 전에 차장님에게 한 번만 보고서를 보여주었더라면 귀한 조언을 얻었을 텐데 그럴 생각조차 못했다. 그 결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도 형편없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결국 Z사와 거래는 중단해야 한다고 결론 냈던 나의 보고서와 달리,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Z사와의 거래는 지속되었다. 의사결정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엉터리 보고서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회사에는 수많은 전공과 다양한 경력을 가진 직원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다. 동시에 나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귀중한 리소스이다. 몸이 아프면 의학서적을 펼쳐놓고 공부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찾아간다. 차가 고장 나면 보닛을 열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비소에 찾아간다. 회사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주변에 있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먼저 청해보자. 본인이 잘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도움을 얻는다면, 더 쉽고 빠르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수 있다. 혼자 끙끙 대면서 나같이 쓰레기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오히려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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