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젊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데 잠시라도 대화의 공백이 생기는 것을 못 견뎌했다. 그래서 늘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려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무엇이든 다 꺼내놓게 된다.
문제는 당시 나의 뇌가 혀에 달려있었다는 점이다. 뇌는 원래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이야기가 머리에서 프로세싱된 후에 혀까지 내려와 입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그 과정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게 된다. 그러나 뇌가 혀에 달려 있던 나는 생각이고 뭐고 할 틈 없이 떠오른 것을 그냥 바로 입 밖으로 뱉어버렸다. 자연히 말 실수할 일이 많을 수 밖에.
한 번은 해외법인 중 한 곳에 장기출장을 다녀온 얼마 뒤 부서 회식을 했다. 부사장님이 주관한 회식이었고, 어쩌다 보니 부사장님 옆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 중 출장 다녀온 이야기가 나왔고, 그 법인은 상태가 어떻더냐는 부사장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본인들이 잘못해서 발생한 비용을 본사에서 보전받아서 다 털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하던데 그게 좀 이상했어요..”
그 법인에 출장 가서 일하던 중에, 법인이 잘못한 부분은 법인이 책임져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을 본사에 떠넘겨서 해결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을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다. 그것도 바로 그 법인을 관리감독하는 부사장님 앞에서 말이다.
순간 주변에 있던 회사분들의 얼굴이 모두 하얗게 경직되었다. 말실수를 한 주제에 눈치도 없던 나는 주변 분들의 얼굴이 왜 굳어졌을까 잠깐 궁금했을 뿐이었다. 이내 잊어버리고 즐겁게 회식을 마치고 귀가했다.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 팀 내 선임 선배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말했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다 말로 꺼낼 필요는 없어.”
전날 회식에서 한 실수에 대한 지적이었다. 순간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이 지적을 듣기 전에는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실수가 그때 뿐이었을까 싶었다. 아마 그 전부터 여러 번 반복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깨닫고 고치려 하지 않으니 고맙게도 선임 선배가 지적을 해 준 것이다. 앞뒤 생각 못하고 상황 판단 못하며 혼자 머릿속에서만 생각했어야 할 말을 굳이 내뱉다니. 이건 그냥 실수 차원이 아니라 명백한 잘못이었다. 순수한 신입사원이라는 탈을 써도 용납되지 못할 일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 판단도 하고 듣는 사람도 가려가며 늘 말조심을 해야 한다.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에 주관적인 의견을 말할 때도 조심해야 하지만, 사실을 전달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후폭풍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사실이 ‘비밀’로 여겨지는 내용이라면 실수로 발설하지 않게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동료의 사적인 비밀이나 업무적으로 보안이 필요한 내용 등을 알게 되었다면 특히 말이다. 나에 대한 타인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비밀 누설이나 말실수일 것이다.
철없고 어리석었던 신입시절 때보다는 더 말조심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가장 좋은 예방책은 아예 말수 자체를 줄이는 것일 터이다. 덜 말하고 더 듣기 말이다. 작가 셀레스트 헤들리는 그녀의 책 ‘말센스’에서 로마 시대 철학가인 카도의 말을 아래와 같이 인용했다.
“나는 말하는 것이 침묵하는 것보다 좋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말한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뇌가 자꾸 머릿속에서 탈출해서 혀로 내려오지 않도록 꽉 붙들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