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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Feb 06. 2023

직장에서의 경조사, 어디까지 챙기나?


직장에서의 경조사. 과연 당신은 어디까지 챙기는가? 회사에서 매일 만나는 팀원부터, 같은 회사지만 건너 건너 얼굴만 알고 있는 다른 조직의 사람들까지 누구에게나 경조사는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경조사에 직접 참석하며, 누구까지는 경조사비를 줄 것인지가 참으로 고민스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자회사를 다니던 시절 결혼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난 한참 뒤에 결혼식이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는 결혼하기 전에 퇴사하려 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 예정일보다 두 달을 더 근무하게 되었고, 그렇게 퇴사 전에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소속된 팀에는 미혼인 사람이 나밖에 없었고, 공교롭게도 주변 팀들에서도 결혼하는 사람이 없었다. 즉 입사 후 나의 결혼식이 있기까지 다른 직원의 결혼식에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혹시 나의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문득 의심이..) 그 때문에 직장 내에서 청첩장을 돌린다는 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청첩장은 그저 ‘저는 몇 월 몇일에 결혼합니다.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그날을 포함해서 며칠간은 자리를 비울 예정입니다.’라고 알리는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팀원들과 주변 팀들 뿐만 아니라 당시에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컨설팅 업체 직원들에게도 청첩장을 돌렸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청첩장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냥 축하의 마음으로 가볍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식장에 직접 가야할지도 결정해야 하고, 식장에 가지 않더라도 축의금을 내야할지 말지, 낸다면 얼마를 내야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복잡다단한 일이었다. 이런 의미를 알고 나서 뒤돌아보니, 당시 아무 곳에나 아무렇게나 청첩장을 돌렸던 것이 얼마나 철없고 배려 없는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 회사 돈을 받고 있으니 일 똑바로 하라고 매일 구박하던 컨설턴트들에게까지 청첩장으로 돌렸다는 것이 이제와서야 참으로 죄송스럽다. 내가 바로 갑질 중에서도 갑질, 진상중에서도 진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때 컨설턴트 리더분께서는 대학 동문이라는 이유로 결혼식에 직접 참석도 하셨다. (이미 십수년이 지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인사 드린다.)


컨설턴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에게도 참 죄송스럽다. 곧 퇴사 예정임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축의금도 내고 결혼식에도 와주었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하자면 축의금만 먹고 퇴사하는 뻔뻔한 ‘먹튀’ 직원이 바로 나였다. 이런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경조사를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가까운 팀원이나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은 당연히 고민의 여지가 없다. 굳이 경조사를 챙길 필요가 없다고 바로 판단되는 경우도 문제없다. 그러나 이 사람의 경조사를 챙겨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일적으로만 만나는 건너 건너 팀 동료 정도가 되면 고민이 되는 것이다. 일 때문에 자주 만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친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이 종종 있는 사이인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챙길까 말까 고민이 되는 경우, 나는 그냥 경조사를 다 챙겨준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수없이 많은 경조사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큰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람의 결혼식 때 축하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 시기가 지나버려 축하 기회를 놓친다고 치자. 그 사람이 신혼여행 다녀오고 사무실로 복귀할 때쯤엔 ‘그때 그냥 축하할걸’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기회는 돌이킬 수 없는 법. 그래서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라도 그때 바로 그 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해준다. 물론 그것이 그 사람의 일생의 한 번뿐인 결혼식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떠하랴. 그 사람의 두 번째 결혼식 때까지는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예상외로 돈해질 수도 있고, 혹은 그때엔 그와 내가 같은 회사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의 두 번째 결혼식은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된다. 물론 이 모든 얘기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을 때 얘기다. 당장 내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굳이 남의 눈치 보느라 힘들게까지 경조사를 다 챙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기준으로 경조사비를 내자면 솔직히 어떤 때는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 살면서 Give and Take가 항상 동시간대에 깔끔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베풀고 나서 한참 뒤에 돌려받을 때도 있다. 더 나아가, 베풀고도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생각지 못한 곳으로부터 베풂을 받는 경우도 있다. 철없던 시절의 나의 결혼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때의 과오를 생각해서라도 아끼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라도 해야 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신 감사한 분들께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먹튀’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줄 만큼 훌륭하신 그분들은 또 다른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베풂을 돌려받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시 나의 결혼식에 참석하였으나 아직 돌려받지 못한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망설이지 말고 연락 주기 바란다.



그림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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