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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Dec 08. 2022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 직장 내에서도 필요한 '고객만족'

 

  네 번의 면접 끝에 입사한 곳은 전자회사였다. 회사 선택 기준의 1순위가 '재미'였던 나는 무슨 일이든 해외로 돌아다니는 일을 하길 원했다. 그래서 배치된 부서는 해외 출장이 주 업무인 해외마케팅 관련 조직의 팀이었다. 정말 신이 났다. 내 돈도 아닌 회삿돈으로 비행기 타고 해외로 돌아다니는 일이라니! 꿈만 같았다. 그러나 입사 후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으니, 그건 바로 호랑이였다. 그렇다. 맹수 중에서도 으뜸인 그 호랑이.


   첫 출근일부터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입사하고 며칠 지내다 보니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해외 마케팅 담당 상무님이 방문을 열기만 하면 모든 팀의 사람들이 책상에 바짝 엎드리는 광경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여러 임원들 중에서도 호랑이처럼 무섭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부하 직원을 혼내기 시작하면 성인 남성도 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였다. 방에 불려 들어간 사람들 중에 무슨 이유에서건 혼나지 않고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무님 방에 불려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상무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불려 들어갈까 두려워 수십 명이 동시에 책상에 바짝 엎드렸다. 신입사원이어서 상무님께 불려 간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 장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입사 후 5개월 만에 영국에 있는 법인으로 출장을 갔다. 5개월 차 신입인데도 회사가 믿고 해외출장을 보내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나란 사람 쫌 멋진 사람 같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해야 할 일이 보통 고된 것이 아니었다. 가르쳐주는 선배 없이 해본 적도 없는 일을 하려니 공수가 많이 들었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강행군이 지속되었다. 신입이라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이를 갈며 일했다.


  그렇게 몇 개월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상무님이 영국으로 출장을 왔다. 상무님을 독대하며 프로젝트 중간보고를 드리게 되었다. 신입치고는 잘했고 고생 많았다는 격려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보고 종료 후 오랜 시간 동안 혼나면서 박살이 났다. 일을 왜 이따위로 했냐, 몇 개월간 출장비만 축냈느냐, 머리에 든 게 뭐가 있긴 한거냐는 등의 집중 포화가 떨어졌다. 살면서 부모님께도 선생님께도 그렇게 혼나 본 적이 없었다. 왜 회사 사람들이 책상 엎드려야 했는지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간의 수고가 무시당한 것 같아 억울했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그 위기를 타개해 나갈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경영학도로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고객만족’을 떠올렸다. 보고를 받는 상무님이 바로 나의 고객이니 상무님을 만족시켜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고객 만족을 위해서는 고객이 원하는 바를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 화산 폭발하듯 화내고 계시는 상무님께 조심히 었다. "상무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맞을까요?" 순간 상무님은 멈칫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화내는 것을 멈추고 프로젝트를 위한 여러 의견을 이야기하였다. 이후 상무님 지시대로 진행했고 8개월간의 긴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복귀 며칠 뒤 갑자기 상무님이 나를 방으로 불렀다. 일개 사원을 방으로 직접 불러 혼내는 일은 드물었기에 팀장님과 팀원들이 모두 놀라며 걱정해주었다. 숨죽이고 바라보는 수십 명의 동정 어린 눈길을 느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상무님이 말했다. 회사에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상무님이 혼냈던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마디도 못하다가 상무님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방을 나간다고 했다. 혼나는 와중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은 사람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달랑 저 이야기만 있었지만 그것이 칭찬과 격려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회사에서 일을 진행하면서 수시로 상사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습관이 생겼다. 회사에는 가급적 상사에게 보고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혼나거나 간섭받기 싫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이 마무리될 때에서야 상사가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한 보고받는 이가 듣고 싶어 하는 내용보다, 보고하는 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보고는 상사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만 할 뿐이다.


  두 경우 모두 상사라는 고객의 만족을 생각하지 못한 경우다. 비록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자진해서 중간보고를 함으로써 상사가 만족하는 방향을 계속 점검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 시에는 항상 보고받는 사람이 이 보고를 통해 알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작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잘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서 질문조차 하지 않고 모르는 채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허나 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당신의 상사가 호랑이든 곰이든 상관없다. 상사가 당신 마음에 안 들어도 고객은 고객인 것을 어찌하랴. 더럽고 치사해도 고객을 만족시켜드리는 것이 당신의 소중한 월급을 지킬 수 있는 비책인 것을.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정신 바짝 차리고 호랑이님의 만족을 위해 노력한다면 말이다. 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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