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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Dec 12. 2022

당돌한 풋내기의 최후

 - 직장 내 세대차이


   "집에 가서 애보기 싫어서 야근하시는거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신입사원 시절에 나이 지긋하신 팀원들에게 톡 쏘아붙이던 질문이다. 당시 팀원들은 모두 최소 과장급 이상 되는 분들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내가 입사하기 전까지 그 팀의 막내는 30대 중후반이었으니, 팀원들 눈에 나는 새파란 풋내기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풋내기가 보통 당돌한 것이 아니었다. 팀장님 포함 다른 팀원들이 모두 퇴근을 안 하고 있는데도 오후 6시만 되면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 퇴근을 했다. 상식적으로 기업의 근로시간은 9 to 6 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6시에 칼같이 퇴근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지긋하신 차장님이 차 한잔 하자며 지하 매점으로 부르셨다. 그러더니 우리 회사는 정식 퇴근시간이 6시가 아니고 7시라고 말했다. 연봉 계약에 한 시간 야근 수당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분노했다. 야근할 이유가 없는데 나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야근을 기본 전제로 연봉을 주다니! 퇴근하고 나서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차장님께 따졌다. 연봉에서 그 돈 제하고 받을테니 6시에 퇴근시켜달라고 했다. 파르르 분노하는 풋내기 앞에서 차장님은 땀을 뻘뻘 흘리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근무시간 및 연봉 계약 관련해서 아무런 권한이 없었던 그 차장님은 무슨 죄였나 싶다.


  억울하게 한 시간 야근을 하고 나서부터는 7시가 되어도 퇴근하지 않는 다른 팀원들이 이상해 보였다. 우리 팀의 주 업무는 해외에 있는 법인에 직접 가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본사에 출근할 때는 급한 일이 없었다. 즉 야근할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7시에 퇴근하는 팀원이 나 말고 한 명도 없었다.


  하루는 너무 궁금해서, 7시 이후에 같이 남아서 팀원들이 무엇을 하느라 야근하는지 관찰했다. 그랬더니 지하 식당에서 저녁 먹고 담배 피우고 컴퓨터로 신문 보는 일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대놓고 팀원들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왜 집에 안 가고 남아계시냐고. 할 일이 있어서 남은 것이라고 다들 주섬주섬 변명을 했다. 그 ‘할 일’이라는 것이, 딱 세 번만 생각해보면 야근까지 할 일은 아니라 판단되지 않냐며 취조했다. 그제야 팀장님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시인한다. 팀장님은 호랑이 상무님이 퇴근을 안 해서 집에 못 가는 것이고 말이다. 이 무슨 비효율이며 시간 낭비인가. 그때는 그런 팀원들이 정말 이해가 안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회사를 오래 다니고 나서야 그때 그 팀원들이 왜 야근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당돌하게 대들었던 신입사원을 보면서 팀원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제는 안다. 이런 또라이가 있나 싶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막내의 질문과 도전을 화내지 않고 받아주었던 그분들께 지금은 너무나 감사함을 느낀다.


  만약 그때 팀원들이 나에게 화를 내거나 질문 자체를 못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팀의 일원으로서 팀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를 받아주고 기다려준 팀원분들 덕분에, 신입이라서 부족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경력이 부족해서 팀에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묻고 공부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일했다. 그래서 팀에 진짜 기여를 하게 되었는지 나 스스로는 판단을 유보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던 풋내기가 결국은 사람 노릇은 하는 팀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신입사원들을 대하다 보니 나 또한 그들의 태도에 당황스러운 적이 있었다. MZ 세대들은 그 전 세대와 너무 달라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들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그런 MZ세대들도, 나중에 그 다음 세대를 보며 아마 똑같이 말할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배 세대와의 동질화가 아니라 기다림과 이해다. 선배 세대가 기다려준다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그들만의 방식대로 팀과 회사에 기여할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에티켓이 없거나 불손한 태도가 있다면 지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에는 좀 달라 보이는 그들도 언젠가는 훌륭한 팀원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나 같은 또라이도 사람 노릇 할 때까지 기다려준 선배들의 이해심을 가진다면, 그 어떤 풋내기도 능력있는 팀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림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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