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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Dec 15. 2022

직장인들에게 회식이란?



회식(會食) : 모일 회 會 먹을 식 食


“회사는 회식을 근무시간 내인 오후 6시 이전에 실시해야 합니다. 또한 회사 워크숍은 반드시 주말이 아닌 주중 근무시간 내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대학시절 ‘인간과 경영’이라는 수업 시간에 발표했던 내용이다. 왜인지는 몰라도, 회사를 한번도 다녀본 적도 없으면서 저런 생각을 했었다. 회식은 직장인들의 퇴근 후 휴식시간을 좀먹는 사회악과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이러하니 입사해서 찾아오는 회식 자리가 반가울 리 없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회식자리를 피했다. 회식은 단지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방법이라고만 생각했다. 회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면 회식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팀장님도 팀원들도 회식 참석을 강요하지는 않아서 회식자리에 종종 빠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회식에 끌려가는 다른 팀원들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보니 뭔가 이상했다. 회식이 있는 날 이후엔 종종 내가 모르는 업무 사항들이 팀원들 간에 공유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팀의 중요한 의사결정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져 있었다. 이를테면 언제, 팀원들 중 누가, 어느 해외법인으로 출장가기로 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사안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심지어 그 내용들이 나에게 제때 공유되지도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종종 회식자리에서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억울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때는 쓸데없이 야심 차고 자신감 넘치던 신입사원 시절이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윗사람이 하라고 해서 그냥 아무 질문 없이 고분고분히 따르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회식자리에 부득부득 따라갔다. 회를 먹지도 못하면서 횟집에서 하는 회식까지 따라가 앉아있었다. 두 눈 부릅뜨고 두 귀 번쩍 열고서 말이다. 하도 따라다니니, 나중에는 팀장님이 나에게 회식 오지 말고  집에 가서 쉬라며 현금으로 택시비까지 쥐여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따라다녀도 여전히 회식자리는 재미있기보다는 불편한 자리였다.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을 오래 하게 되어도 회식은 여전히 편하고 즐겁기만 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그러나 점차 회식의 효용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회식은 단지 정보 공유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자리였다. 특히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다른 직원과의 회식은 둘 사이의 긴장관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회식을 함께 하며 업무 외적으로도 대화를 나누고 나면, 기존에 업무적으로 얽혀 있던 갈등이 쉬이 풀리기도 했다. 마치 소개팅을 할 때 차만 마시는 것보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어색한 분위기를 푸는데 더 도움되듯 말이다.


  경험상, 업무논의를 할 때 이메일만 덜렁 보내는 것보다 전화도 해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았다.  전화만 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서 얼굴 보고 논의하는 것이 나았다. 더 나아가 그냥 얼굴만 보고 얘기하기 보다는 식사를 같이 하며 논의하는 것이 업무 협의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굳이 회식을 통해 사적인 관계를 쌓지 않아도 명분과 논리로 잘 설명하여 업무적 갈등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발도 약하고 논리력도 부족한 나에게는 회식을 통해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이 업무 진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결국 회사 일이라는 것도 사람 대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결코 회식을 찬양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회식의 효용을 찾게 됨으로써 그것을 덜 싫어하게 된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회식’이라는 것으로부터 얻은 가장 큰 효용은 회를 못 먹던 내가 회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들 회삿돈으로 고급 회를 먹는데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자니 뭔가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맛이 없어도(정확히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더라도) 단백질 약이라 생각하며 한점 두점 먹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년 하고 나니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니! 이 맛을 모르고 살았더라면 얼마나 억울할 뻔했던가. 고로 나에게 회식이란 한자 그대로 ‘모여서 먹는다’는 뜻의 會食이 아니라 ‘생선회를 먹는다’는 뜻의 膾食일 지어니, 이제부터 나를 회식 자리에 부르고자 자는 필히 횟집을 예약하시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그림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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