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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Dec 19. 2022

귀한 트로피가 된 목걸이 - 1편

 -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과 일하기


  신입사원 때 해외법인지원팀에 속했던 나의 업무는 말 그대로 해외법인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해외법인에 출장 가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여러 달 머물면서 해당 법인의 업무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찾아서 개선까지 해주고 오는 일이었다. 즉, 법인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어려움이 있으나 현업이 너무 바빠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결해 주는 일이었다. 또는 법인이 미처 인지하고 있지 못한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찾아내서 개선안을 도출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두 가지의 어려운 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해외법인이 우리를 ‘도와주는’ 팀이 아니라 ‘감시하는’ 팀으로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말이 좋아서  도와준다는 것이지, 해외법인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타 부서에 드러내야 하는 문제였다. 누구든 자신들의 잘못을 남에게 들키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회사에는 ‘진단팀’이라는 무시무시한 팀이 있었다. 진단팀은 해외법인에 감사나와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어 필요시 징계까지 내리는 팀이었다. 문제점을 찾아낸다는 점에서 우리 팀이 진단팀과 비슷한 조직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그래서 법인은 처해있는 모습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꺼려했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법인이 처해있는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어려움은 내가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이라는 점이었다. 기존 업무 프로세스를 면밀히 분석하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일은 그럴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즉 회사의 각종 업무를 경험해 본 경력 많은 직원이 할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나는 입사 5개월 차 신입사원으로서, 회사라는 유기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현업이 하는 일들을 어느 것도 해본 적도 없었다. 노련한 경력자라는 거짓말도 통할 것 같지 않은 (미모의) 새파란 새내기가 나타나서 도와주겠다니! 법인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첫 출장을 나간 영국법인의 직원들은 순순히 협조해주지 않았다. 현지의 업무를 면밀히 파악하려면, 내부 자료 분석과 직원들의 인터뷰가 필수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인터뷰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분석을 위해 요청한 자료도 이런저런 핑계로, 혹은 아예 들은 척도 안 하며 제출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협조적인 직원들이 세 명 있었다. 한 명은 한국인 프로덕트 매니저였다. 연차가 높은 그는 나를 공개적으로 무시했다. 자료라도 요청할라치면, 바쁜데 방해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본사에서 너 같은 신입사원을 보내다니… 네가 그렇게 잘났어? 잘났으면 더 좋은 회사를 가지, 왜 이런데서 일하고 있어?”라는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소리칠 때면 주변에 앉아있는 직원들까지 눈치를 볼 정도였다.


  두 번째는 영업지원팀 직원으로, 현지 채용된 인도계 영국인이었다. 그녀는 다른 어느 직원보다도 오랫동안 해당 법인에서 일한 베테랑이었다. 그래서 법인에서 돌아가는 일과 히스토리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와의 인터뷰는 꼭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인터뷰 시간을 전혀 내주지 않았다.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말도 못 붙이게 했다.


  세 번째는 영화 ‘백투더퓨쳐’에서 타임머신을 발명한 할아버지 주인공을 쏙 닮은 영국인 회계팀장이었다. 그는 아예 나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필요 자료를 요청하려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고 이메일을 보내도 답도 없었다.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인사 조차 받지 않았다. 내가 마치 벽지에 그려진 그림인 것 마냥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나쳤다.


  처음엔 이러한 대접에 화가 많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이들의 태도가 이해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계해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래서 나만의 작전을 짜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어떠한 작전을 짰냐고? 그건 다음 편에서 알려드리려 한다. 낚시는 절대 아니다. 굳이 포장하자면, 길고 지루한 나의 하소연에 당신이 빠져서 허우적대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고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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