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20년 지기 친구가 나를 평가하며 했던 말이다. 이렇게 이중적인 성격은 20대 때도 그대로였던 것 같다. 소속되는 것은 좋았지만 속박되는 것은 싫었다. 첫 직장에 입사하며 회사에 소속되는 것은 좋았으나, 회사에서 시키는 것들에 속박되는 것이 싫었다.
속박의 대표적인 예가 신입사원 합숙교육이었다. 그룹 내 각 계열사의 신입사원들을 섞어 모아 몇 개의 반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2주간의 교육이었다. 대학이라는 안전한 물 밑에서 사회라는 물 밖으로 건져 올려진 나는 갑판에서 펄떡대는 생선과 같았다. 시스템에 들어와 적응하기엔 아직 날 것 그대로였던 말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합숙소에 가두어놓고(?) 진행되는 합숙교육이 정말 싫었다.
우선합숙소에서 2주간 꼼짝 못 한다는 것이 싫었다. 마치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4명이서 방과 화장실을 같이 쓰자니 숨이 막혔다. 창업주의 자서전을 의무적으로 읽히는 것에도 거부감이 들었다. 김일성을 섬기는 공산당도 아닌데 창업주에 대해 주입식 교육(?)을 받다니, 괜스레 반항심이 들었다. 일요일에는 아무런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서 성당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도 화가 났다. 실은 그전에도 가끔씩 주일미사를 빠지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억지로 못 가게 하니 더욱 미사에 가고 싶어졌다.
감정에 솔직한 성격인 터라 이러한 불만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당시 매일 밤마다 하루의 교육을 돌아보는 일기를 써서 다음날 제출해야 했다. 그러면 한 반의 담임선생님 역할을 하는 선배사원이 매일 읽고 피드백을 주었다. '오늘 교육 중 새롭게 xx를 배워서 좋았어요.'라는 등 주최측(?)이 기대하는 모범답안이 따로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나의 불만과 교육과정의 개선방안을 가감 없이 기재했다. 이를테면'창업주의 자서전을 강제로 읽게 하여 책이 주는 감동을 반감시켰습니다.'등의 내용을 적은 것이다.
일요일에 성당에 못 가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선배사원에게 야멸차게 따졌다. 헌법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왜 성당에 못 가게 하느냐고 말이다. 선배사원은 난감해하며 회사 방침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쩔쩔맸다. 너무 분해서 씩씩거렸지만 그래도 회사는 다녀야겠으므로 무단이탈은 하지 않고 분을 삭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선배사원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필 또라이같은 신입사원이 자기 반에 들어와서 그렇게 고생을 시켰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 퇴사하고 결혼 및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다가 7년 만에 다른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니 내가 달라졌다. 회사에서 합숙교육을 가라고 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혼자 며칠간 합숙소에 들어가는데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렇다고 내가 가족들에게 소홀한 아내이자 엄마는 아니었으니 괜한 오해는 마시라.)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주는 데다가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질 좋은 교육까지 시켜주다니! 이건 뭐 호캉스 부럽지 않은 교캉스(교육 바캉스)였다.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행복했다. 자의에 의해 퇴사했지만, 가끔은 그런 교육이 그리워서 다시 회사에 취업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항심에 가득 차 교육을 받던 신입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합숙교육을 즐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합숙교육은 인당 몇백만 원이나 하는 비싼 교육이라고 한다. 개인이 사비를 들여 받기에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소속된 곳이 없으면 받을 기회도 없는 교육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속박과 구속을 싫어하는 피 끓는 직장인이라 해도 회사 교육을 즐겨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라고 해서 영원히 직장인으로 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저주는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