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어서 나간 것은 아니고 그저 나갈 때가 되어서 나갔다. 딸은 다사다난했던 고3 시기를 무사히 마치고, 미국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8월 말 입학을 앞두고 딸을 미국으로 데려가서 학생아파트에 입소시키고 돌아온 지 만 하루가 지났다.
이민 가방 세 개, 일반 캐리어 세 개, 박스 두 개. 이렇게 승용차에 다 들어가지도 못할 짐을 구겨 넣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탄 것이 이제 고작 일주일 전. 그러나 한참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미국 도착해서도, 딸 집에 필요할 샴푸, 비누 등을 사러 뛰어다니느라 며칠이 후딱 지나갔다. 헤어짐의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그러다가 진짜 헤어지는 순간이 왔다. 딸의 아파트 앞에서 딸과 포옹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있으라고 말한 뒤 차에 올라탔다.
딸과 헤어질 때 울면 딸도 힘들어할까 봐, 비단 떨리는 목소리일지언정 울지는 않고 헤어졌다. 딸도 울지 않았다. 그러나 차 타고 딸의 아파트가 멀어져 갈 때쯤 눈물이 흘렀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단지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는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딸이 내 뱃속에서 나와 처음 품에 안겨 울던 그 순간부터, 기어 다니던 시절, 아장아장 걷던 시절, 엄마 좋다고 비비던 유치원 시절, 태권도 배워온 것 자랑하던 초등 시절, 왜 화나는지 모르겠는데 화가 난다고 짜증 내던 중등 시절, 입시 준비하느라 예민해서 엄마와 많이 싸우던 고등시절까지, 20년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스쳐가며 눈물이 줄줄 났다.
딸이 성인으로서 독립할 이 순간을 위해서 지난 20년간 그렇게 애를 쓰고 희로애락을 맛보며 키워왔던가... 허탈하기도 하고 실감이 잘 나지 않기도 하고.. 울었다가 괜찮았다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딸만 미국에 두고 왔다는 게 실감 나서 울었다가 또 괜찮았다가... 헤어진 후 계속 울었다가 괜찮았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잘 살아가도록 독립을 준비시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아쉽다는 말만으로는 표현 못할 오묘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딸은 잘 자랐다. 특히 딸이 성인이 된 올해, 의견 충돌을 수없이 겪으면서 딸에게 주체적인 가치관이 잘 성립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딸은 나에게 소중한 아기다. 내 아기. 엄마한테 대들고 짜증내서 화나게 해도, 내가 온몸과 마음을 다해 무엇보다 소중하게 키워온 내 아기. 90세 먹은 엄마에게는 70세 아들도 애기일 뿐이라는 말처럼, 아직도 보호해주고 싶은 내 아기.
성인이 된 딸과 싸울 때마다 "아이고 저렇게 제 맘대로 고집 피우고 안 맞으니 빨리 집에서 내쫓아야지!"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이제 딸을 독립시킬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내 아기를 품에서 떠나보내는 순간이 다가오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내 아기는 엄마처럼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드디어 독립했다고 흥분하면서 신나고 짜릿해했으면 좋겠다. 비록 엄마의 부재가 아쉬운 순간이 올지라도 그 순간은 잠시 뿐이고,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행복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엄마와 한국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잠 못 이루는 밤이기를, 아쉬움과 슬픔과 애잔함과 애틋함은 오롯이 엄마 몫일뿐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