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몸이 안 좋아서 일찌감치 아들에게 얘기했다. 오늘 저녁은 엄마가 밥차리기 힘드니 그냥 단둘이 외식하자고. 아들도 좋다고 했다.
그러다 저녁때가 되어서 저녁 6시부터 밥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잠깐만요!"라고 다급한 목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흘러나온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한창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배고프지만 기다렸다. 하던 게임만 끝나면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두 시간이 흘렀다. 벌써 저녁 8시다. 화가 치민다.
"밥 먹으러 안 갈 거야? 안 나오면 그냥 엄마 혼자 간다."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차갑게 얘기했다. 그제야 아들이 삐죽삐죽 나온다.
평소 같으면 어디 가서 뭐 먹자고 의논하며 같이 가는데 오늘은 아무 말 없이 식당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평소대로라면 내 옆에서 걸었을 아들이 한 발짝 뒤에서 조용히 따라온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아는 것이다.
식당에서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밥 먹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물론 하고 싶은, 아니 뱉고 싶은 말이 많았다. 분노에 찬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와 꿈틀댄다. 다 퍼부어버리고 싶다.
"게임이 밥 먹는 것보다 중요해?"
"엄마와 약속은 안중에도 없는 거니?"
"엄마가 너 게임하는거 배려해서 기다려줬잖아! 근데 너는 아픈 엄마 생각은 안하니?"
"다른 사람의 시간을 너 때문에 이렇게 허비하게 해도 되는 거야?"
하지만 침을 꿀꺽 삼키며 참는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입을 열 때가 아니다. 입밖으로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폭발하는 불만의 잔소리들을 밥숟가락 쑤셔넣으며 참아냈다.
어떻게든 침묵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으니까.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주도권은 아들에게 넘어간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들은 이 갈등 상황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변명으로 시작해서 반항으로 넘어갈 것이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늘어지며 이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가져가려 할 것이다.
"엄마가 밥 먹으러 가자고 했지, 몇 시에 가자고 정확히 말은 안 했잖아요!"
"내가 한참 게임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자고 하면 그걸 어떻게 바로 끊어요?"
"갑자기 내가 게임에서 나가버리면 같은 팀으로 플레이하던 친구들은 뭐가 되어요?"
아들의 반격이 이렇게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잘못에 대해 성찰이란 걸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기회를 아들에게 줄 수 없다.
그래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아들도 아무 말을 못하고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침묵해야만 아들은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왜 엄마가 말이 없는가..'로 시작해서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던가..'로 흘러갈 것이다.
아들은 이미 본인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소리 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잔소리는 훈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잔소리로 아들과의 싸움에서 설사 내가 이길지언정, 그걸로 아들은 기분 상하고 억울한 감정만 남을 것이다. 퍼부어대면 내 속이야 후련하겠지만은, 아들은 오늘 일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냥 엄마랑 싸운 수많은 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겠지.
참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주도권을 지킬 수 있다. 아들에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폭발하는 분노 감정과 훈육을 위한 이성 사이에서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며 그렇게 애써 침묵을 지켜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