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골프 치러 갈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줬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서 그 시간엔 비몽사몽 밥을 차린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들었다.
해외출장으로 새벽 4시에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도 꼭 아침밥을 차려주곤 했다. 쉽지 않아도 꼬박꼬박 아침밥을 챙겨주는 이유는 남편이 이뻐서이다. 언젠가 남편이 아침 밥상 앞에서 진지하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버틸 수 있는 건 다 당신이 차려주는 아침 밥상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이렇게 이쁘게 말하는데, 어떻게 밥을 안 차려 줄 수 있는가? 아내의 사랑도 믿음도 아닌 밥상 덕에 힘든 사회생활을 버틴다는데 어떻게 안 차려 줄 수 있겠는가.
오늘도 골프장 가는 길 운전 중인 남편이 전화해서 이런 말을 했다.
"난 참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에 혼자 놀러 가는 남편이 뭐가 이쁘다고,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로 아침밥 차려주는 와이프를 보니 말이야. 고마워~!"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당연시 생각할 법도 한데 이렇게 예쁘게 말해주다니.. 10분도 안 걸려 뚝딱 차릴 수 있는 밥상이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보람이 느껴진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비밀이지만) 처음부터 남편이 이뻐서 밥상을 차려준 것은 아니었다. 이제와 이실직고 얘기하자면, 처음엔 남편이 밉다는 이유로 밥상을 꼬박 차리기 시작했었다.
신혼 초 남편은 일하고 나는 전업주부이던 시절, 우리는 여러 가지로 자주 다퉜다. 지금 와 생각하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사소한 것들로 부딪치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입장에선 억울하고 화나는 상황이 많았다. 싸우고 나면 아침밥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결혼생활을 오래 해왔던 누군가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아무리 남편이 미워도 네가 할 일은 다 해주고 나서 싸워야 네가 큰소리치고 이길 수 있어."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말발로는 이길 수 없는 남편이니,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이길 수 있겠다 싶었다. 아침밥이 내가 이길 수 있는 여러 패 중에 하나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이 중요시하는 아침밥을 매일 꼬박꼬박 차리기 시작했다. 전날 밤 크게 싸우고 얼굴 보기 싫을 정도로 화가 나도 아침이 되면 밥상을 꼭 차려줬다. 그것도 더 정성 들여 차렸다. 그래야 나중에 싸우더라도 "나는 아무리 화나도 내 할 일 다 하면서 아내 노릇 다 했는데 당신은 도대체 뭐야!"라고 큰소리 칠 수 있을 테니까.
이 작전은 결혼 초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더니, 시간이 가고 아침밥이 누적될수록 힘을 발휘했다. 남편과 사이가 좋을 때 나는 일부러 생색내며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회사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 이렇게 아침밥 잘 챙겨주는 와이프가 또 있는지. 우리 회사 부사장님도 아침밥을 댁에서 안 드시고 회사 와서 드시더라."
그런데 진짜 내 말대로 남편이 지인들에게 물어봤던 모양이었다. 의외로 아침밥을 얻어먹고 나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걸 남편은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와, 팀장님 용감하네요! 요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직접 안 챙겨 먹고 아내분께 아침밥을 달라고 해요?"
이런 대화들을 반복하고 나서 점점 남편은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아침밥이 축적되고 나니 아내에게 저렇게 이쁘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니 나는 또 기쁘게 아침밥을 챙겨주는 선순환이 된 것이다.
옛 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자주 쓰면서도 참 뜻이 뭔지는 잘 몰랐었다. 그런데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미워서 아침밥 하나 더 챙기던 상황과 비슷한 의미 같다. 정말 미워 죽겠는 사람에게 떡 하나씩 더 챙겨 주다 보면 언젠가는 그 미운 놈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테고, 나 또한 그 사람이 더 이상 밉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운 놈 밥상 하나 더 주다가 미운 놈이 이쁜 사람이 된 우리 집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