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 - (2)
전시회장 내부는 이른 시간부터 도착한 참관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전시회는 아직 오픈 전이라 전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선 사람도 있었고, 앞에서 참관객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전시 관계자분들도 있었다. 전시회장을 들어가는 입구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장날처럼 사람들로 가득했고, 이곳에서 오랜만에 만났는지 정말 반가워하면 끌어안는 사람, 호탕하게 악수하는 사람, 간단히 목례로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인사말들을 모두 이해하진 못해도 기분 좋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들과 입구에 서서 간단히 어떤 식으로 전시장을 구경할 것인지 이번 전시회인 Automatica의 안내 팸플릿을 들고 토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탑승 로봇(?)에 눈길이 갔고, 책임연구원님이 사진을 하나 찍어달라고 하셔서 로봇에게 사진촬영 포즈를 부탁하고 사진을 한참 찍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본부장님이 자연스럽게 옆에 서서 나도 찍어주시겠다며 같이 서보라고 하셨다. 기대하지 않은 타이밍의 등장이라 잠깐 놀랬지만, 짧은 감탄사로 대신하고 인사를 건네어드렸다. 한국에서도 최근 자주 뵙지 못하는 분을 이곳 머나먼 땅 독일에서 뵙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절로 들었고 괸시리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즐거우면서도 긴장이 되는 이곳 뮌헨에서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설레고 기분 좋은 감정을 피어나게 했다. 사람인 한자가 두 명의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 건,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이곳에서 혼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이곳은 설레고 외로운 뮌헨이다.
입장시간이 되어 사람들은 줄 서서 입장 티켓의 QR을 찍으며 창구를 통과해 본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들은 메쎄 뮌헨의 A, B동들을 사용하고 있었고 각 동들은 1~6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부장님과는 점심시간 따로 만나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한참 전시장을 돌다 일행에게는 따로 식사하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서인지 다들 식사 생각이 크게 없다고 하며 흩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본부장님을 만나기 위해 식사를 하든 하지 않든 연락을 드렸다. A동과 B동 사이의 정원 같은 곳 근처에 계신다고 해서 그 근처로 찾아갔다. 건물 사이에 공원 같은 공간, 그 사이에 카페 같은 곳이 있었고 그 주위로 테이블들이 있었다. 이미 테이블들 중 대부분이 사람이 앉아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특히 그중에서 따가운 볕을 피할 수 있는, 파라솔이 있는 테이블들은 얄짤없이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얼른 테이블들을 살피기 시작했고 파라솔이 있는 자리에 두 분이 이미 앉아있지만 테이블 한쪽 끝자리는 현재 채워지지 않은 자리를 발견했다. 나는 곧바로 그 두분에게 다가가서 혹시 한쪽 끝에 앉아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흔쾌히 그러라고 허락을 받은 뒤, 가방을 두고 카페 앞으로 가서 줄을 섰다. 생긴 건 카페처럼 생긴 곳엔 몇 가지 종류의 샌드위치와 페트병에 담긴 음료, 맥주 정도를 팔고 있었다. 딱히 다양한 메뉴가 있진 않아 눈에 보이는 샌드위치와 제로콜라로 주문했다. 아직 엄청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건 본부장님께서 사주시는 거라 일단 먹고 보자는 생각으로 제일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로 골랐다. 다만 우리나라 카페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샌드위치는 아니었고 굉장히 거칠어 보이고 건강과 포만감만을 위해 설계된 샌드위치 같았다. 역시 맛도 굉장히 건강건강한 맛이 났다. 싫지 않지만 좋지도 않은 그런 맛 말이다. 요즘 다이어트를 하느라 건강한 식단을 먹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건강한 맛은 아직은 좀 어색하다.
전시장의 하루가 마무리되어 슬슬 나가야 되는 시간이 되었다. 한참을 혼자 돌아다니다 끝에 일행 중 한 분을 만나 자연스럽게 동행하였고 시간이 좀 남아 같이 소파가 있는 곳을 찾아 잠깐 앉아 있었다. 10분 정도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이번 일정을 위해 만든 톡방에 모이자는 연락이 온 것을 확인했다. 입구로 출발하겠으니 곧 뵙겠다는 연락을 남긴 뒤, 입구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이번 일정에서 가장 바보 같은 실수를 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호관의 번호 순서를 보고 숫자가 줄어드는 방향을 향해 입구 쪽이라 당당히 주장하며, 자신 있게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자신감과 근거로 이런 얘기를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필즈상을 수상하신 수학자 허준이 교수님께서 사람의 근거 있는 자신감은 무척이나 연약하기 때문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 누가 나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허준이 교수님의 명언을 읊을 것이다. 하지만 나랑 같이, 바로 옆에 입구를 두고도 반대편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일행 분에게는 차마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거듭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나의 길치력이 이렇게 문제가 크다는 장난스러운 애교로 혹시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도 이분께서, 더 돌아볼 수 있어서 오히려 재밌었다는 말씀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이런 불편할 수도 있는 일을 마주하는 상황속에서 상대방도 나도 기분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